“이승환씨도 나이가 60이다. (…) 시민 분열에 대해 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장호 경북 구미시장이 지난달 가수 이승환씨의 구미 문화예술회관 콘서트를 취소하며 한 말이다. 보수단체와의 충돌 가능성으로 시민 안전을 고려해 ‘정치적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청했으나 이씨 측이 거절하자 보인 반응이었다. 이씨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강력히 반발하며 현재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86세대 어느새 “뇌썩는” 60대
2030은 “영피프티 젊은 줄 착각”
연륜의 지혜 중시 전통 사라져
늙음 혐오 현상 모두가 반성해야
얄궂게도 대부분의 언론사는 문제의 핵심이 아닌 “나이 60” 발언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별명이 ‘어린 왕자’인 이씨가 어느새 ‘환갑’을 목전에 뒀다는 사실, 그런 점을 이씨보다 4살 아래 시장이 의도적으로 입에 올린 것이 화젯거리라고 판단했으리라.
과연 많은 뉴스 댓글이 달렸다. “나이를 들먹이다니 치졸하다”는 댓글들이 있는가 하면, “86세대 ‘진보’들이 업보 빔을 맞았다”며 고소해 하는 댓글들도 보였다.
자신의 언행 부메랑 되는 ‘업보 빔’
‘업보 빔’은 자신의 언행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가리키는 요즘 유행어다. 일찌감치 현실 정치에 뛰어든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는 ‘민주화 세대’이자 ‘변화의 주체’로서 정치의 주도권을 두고 기성세대인 ‘산업화 세대’와 필연적으로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젊음을 무기 삼고 기성세대의 늙음을 문제 삼으며 나이든 이들은 일선에서 물러나라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어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현재 71세)은 2004년 “60~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했다. 같은 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현재 65세)은 “50대 접어들면 죽어 나가는 뇌세포가 (…) 많다. 사람이 멍청해진다. 60세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고 했다. 이 말은 “60세가 되면 뇌가 썩는다”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회자된다. 2023년 유 전 이사장이 2030 남성의 보수화를 거친 말로 비난하자 진중권 광운대 특임 교수가 “60세가 지나면 뇌가 썩는다는 본인 가설을 입증하려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밖에 2023년 김은경 교수의 사례 등 86세대 진보·좌파 진영의 ‘늙음에 대한 공격’ 발언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편 기자가 속한 X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는 86세대의 정치적 경향을 이어받은 동시에 서구적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서 노인 공경 문화에 대한 반발 및 ‘늙음 혐오’ 정서가 더욱 뚜렷하다. 젊음에 대한 집착도 완강해서, 10년 전 X세대 절반이 40대가 되자 ‘영포티(젊음을 유지하는 40대)’라는 말이 나타났고 이제 50대가 되자 ‘영피프티’라는 말이 생겼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긍정적인 의미인 ‘영포티’ ‘영피프티’가 2030 세대에게는 ‘젊지 않은데 젊은 줄 착각하며, 자기들보다 윗세대는 늙었다고 무시하고 아랫세대에게는 꼰대질하는 세대’라는 뜻의 조롱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영피프티’ 개념을 소개하자 소셜미디어에서 2030세대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러자 여러 문화평론가가 원인 분석을 했는데 그중 하나는 2030세대가 4050세대, 특히 X세대를, “산업화·민주화가 완성된 상태에서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풍족한 환경을 즐기며 막연한 진보주의에 치우쳐 뒷세대를 위한 현실적 기반을 마련해주지 못한 세대”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런 심정이다 보니 2030세대가 정치적으로 보수·우파화됐을 것이다.
젊은층의 보수화는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찬반 시위대의 연령 구성에서도 보인다. 계엄령 직후에는 2030세대가 주축이 된 탄핵 찬성 집회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탄핵 반대 집회에도 적지 않은 청년층이 참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로이터통신은 8일 자 ‘공세에 몰린 한국 지도자 윤, 젊은 보수 남성들에서 동맹군을 찾다’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20대 대학생과 30대 유튜버를 인터뷰하며 그러한 현상을 전했다.
인터넷 설전에서는 늙음에 대한 세대 간 갈등 현상이 벌어진다. 우파적인 댓글에 “어르신, 이럴 시간에 손주나 보세요” “틀딱(‘틀니 딱딱’의 줄임말로 노인 비하 비속어)”이라는 조롱 댓글이 달리면 바로 “아, 50대 진보 대학생 오셨어요?” “나는 07년생인데 누가 틀딱이지?”라는 댓글의 댓글이 달리는 형국이다.
서글픈 사실은 한국의 좌·우파가 서로 늙었다며 조롱할 뿐 늙음을 조롱하는 것 자체가 옳은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토록 늙음을 혐오하는 풍조는 우리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정도는 서구의 영향이라고 본다.
물론 서구의 현인들 가운데 늙음의 장점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은 많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자기 발견의 즐거움은 나이듦의 보상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양미술사에는 ‘젊음=아름다움=좋은 것’ ‘늙음=추함=안 좋은 것’이라는 공식에 해당하는 작품이 많다. 우선 그리스 신화의 남신과 여신들은 하나같이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르네상스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승리’는 청년이 노인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어쨌든 청년이 승리한 것이다.
한국의 ‘할미’ 그리는 제이디 차
반면에 우리의 옛날이야기에는 ‘산신령 할아버지’와 토종 창조신 ‘마고 할미’ 등 노인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늙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큰 지혜와 연륜과 권위의 상징으로 여긴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서구 문화가 몸에 밴 한국계 작가 제이디 차는 “아시아에는 노인 공경 문화가 있는 반면에, 서양 문화에는 그런 게 없어서 노인에 대해, 특히 여성 노인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서서 혐오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한국 신화의 ‘할미’ 신들을 알게 되었을 때 경이롭고 흥미로웠다”며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린 그림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어쩌다가 늙음이, 좌우파 모두 서로를 ‘틀딱’이라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구실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X세대, MZ세대가 모두 예외 없이 반성해봐야 할 문제다. 윗세대의 공로와 연륜은 존중하지 않고 아랫세대에게 ‘참 어른’이 되기는커녕 권위만 내세우지 않는지 말이다. 이념 갈등과 정국 혼돈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새해, 우리 스스로 참 어른이 되는 길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