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것도 꼴 보기 싫은 ‘내 편’에게

2025-02-28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린이링(가가연)의 삶은 꽤 번듯합니다. 30대 기혼 커리어우먼의 정석이랄까요. 광고 회사에 다니는 이링은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도 유연하게 넘기는 베테랑입니다. 결혼에 큰 뜻은 없었지만, 광고의 한 장면처럼 우연히 만난 쩡쉐유(류이호)와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됩니다. 일도 사랑도 잡은 셈입니다.

3년째 시어머니의 집에 얹혀살고 있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맞벌이하는 며느리가 바쁜 걸 이해하는 분이거든요. 이링이 설거지하는 것을 걱정스레 지켜보다가 그릇을 남몰래 직접 헹궈낼지언정 집안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새벽에 청소하겠다고 불쑥 아들 부부네 방에 들어오지만 이링에겐 “아직 일러. 5시밖에 안 됐어”라며 다시 자라고 하시니, 괜찮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에 시누이 가족이 놀러와 약속을 잡지 못하는 것도, 입었던 속옷을 시어머니가 맨손 빨래하는 게 신경 쓰이는 것도, 이 와중에 남편 쉐유는 쿨쿨 코를 골며 잘만 자는 것도···, 괜찮···을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12부작 대만 드라마 <결혼까진 했는데···요!>는 3년 차 부부 이링과 쉐유의 아주 현실적인 결혼 생활이 담긴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시댁에서 사는 것을 참다못한 이링이 ‘분가’를 선언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담아냈습니다.

이링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사회화된 미소를 은은하게 짓지만, 속마음은 신랄합니다. 지인의 돌잔치에서 “다른 사람이 애 낳는 걸 보면 언니도 낳고 싶지 않냐”는 후배의 말에 웃어 보이면서도 속으론 “넌 장례식 보면 죽고 싶니?”라고 생각하죠. 이링을 피곤하게 하는 시트콤적 상황들에 얹히는 냉소적인 내레이션은 극의 유머를 담당합니다.

순한 쉐유는 객관적으로 괜찮은 남편입니다. 이링에 대한 애정을 잘 표현하고, 이링이 화를 내면 불쌍한 표정으로 듣다가 마음을 풀어줄 줄 압니다. 어머니의 말을 지나치게 잘 듣는 ‘효자’이지만 어머니를 거스르려는 아내의 결정도 군소리 없이 따르는 편이에요.

평범하게 괜찮은 두 남녀가 ‘시월드’ ‘아이 문제’ ‘집 문제’ 에 유치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더 알아갈 게 없다고 생각했던 서로를 더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에 극적인 ‘빌런(악역)’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요. 이링은 “삶이 힘든 건 아니다”라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끓는 물처럼 결국 폭발한다”고 말합니다. 쉐유 때문도, 시어머니 때문만도 아니건만 자꾸 뾰족한 마음이 남편을 향하는 이링의 내면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대만 드라마 <상견니>에서 때론 아련하고 때론 활달한, ‘첫사랑’의 얼굴을 연기해 낸 가가연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교복 차림으로 스쿠터를 타고 리쯔웨이(허광한)와 등교하던 그의 모습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되기도 했던 <상견니>의 상징이죠.

<결혼까진 했는데···요!>의 이링도 스쿠터를 탑니다. 아련한 등굣길이 아닌, 남편과의 다툼에 화를 삭이려 분노의 질주를 하지만요. “쫓아오지 말라”는 경고에도 쉐유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부랴부랴 스쿠터를 대여해 뒤쫓아 갑니다. 결국 느슨해지는 추격전에서 가가연은 하품을 하며 스쿠터를 몹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동화를 들으며 세뇌당해서 왕자와 공주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로 생각한다.” 드라마 초반에 나오는 이 내레이션처럼, <상견니>가 여운을 남기는 동화 같았다면 <결혼까진 했는데···요!>는 마침표 없이 로맨스를 이어가는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결국 한 스쿠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링과 쉐유를 보다 보면,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납니다. 적당히 행복하고 때론 지긋지긋한 지금이, 동화보다 나쁠 건 없지 않나? 생각하게 합니다.

내레이션 찰짐 지수 ★★★★★ 맵다 매워, 인생 비평의 장인 같은 목소리

박장대소 지수 ★★★★ 나도 모르게 깔깔 웃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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