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업뎃 논란’으로 본 온라인 서비스 개편 후폭풍
지난달 23일 카카오는 카카오톡(이하 ‘카톡’) 출시 15년 만에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의 첫 화면에선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전화번호부 식의 친구 목록이 중심이었다. 이를 친구의 프로필 변경 내역을 최우선 노출하는 피드(타임라인) 중심으로 전환했다. 1분 내외 짧은 영상 콘텐트인 쇼트폼 노출도 확대했다. 소셜 미디어인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형태다. 약 4930만 명(지난 2분기 월평균 이용자 기준)이 쓰는 ‘국민 모바일 메신저’의 야심찬 변신에도 시장은 평점 테러와 주가 하락 등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가 카톡 개편에 나선 데는 경제적 측면, 즉 민간 기업의 지상과제인 이윤 창출에서 전환점이 필요했던 게 컸다. 카톡을 핵심 플랫폼으로 둔 카카오는 압도적 시장점유율에도 정작 재무제표 및 미래 기업가치와 직결되는 세부 지표에서 지난 수년간 사정이 급격히 악화했다. 앱 시장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카톡의 이용자 월평균 체류 시간은 2021년 7월 800분에서 올해 7월 709분으로 4년 사이 11.4% 줄었다. 인스타그램이 575분에서 989분으로 72%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10대 카톡 체류 시간, 인스타의 절반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체류 시간은 플랫폼이 수주하는 광고 숫자나 단가와 직결된다”며 “체류 시간이 늘어야 인공지능(AI) 등 다른 차세대 분야 투자를 늘려도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가 되는 건데 카카오는 이 지점에서 한계를 절감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카카오의 영업이익률은 2022년 8.4%에서 2023년 6.1%, 지난해 5.9%로 하락했다. 이는 카톡에 신규 유입되는 10대 청소년이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카톡을 잘 이용하지 않는 세태와 관련이 깊다. 지난해 6월 기준 카톡의 10대 이용자 월간 체류 시간은 4821만 시간으로 인스타그램(9411만 시간)의 절반가량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10대는 주로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소통한다”며 “카톡에 가입해도 부모님 등 일부 어른과 대화하는 용도로 잠깐 쓸 뿐 오래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카카오가 이번 카톡 개편에서 메신저라는 플랫폼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한편, 언뜻 보면 직접적인 경쟁상대 같지 않은 인스타그램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UI/UX)을 벤치마킹한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10대와 20대 등 카톡을 즐겨 쓰지 않는 젊은 세대 체류 시간을 늘리려면 인스타그램처럼 피드와 쇼트폼을 강화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셈법이 통하려면 카톡의 핵심 이용자인 30대부터 중·장년층까지는 이런 개편에도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카톡과 경쟁하는 메신저인 라인 앱 설치 건수는 지난달 26일 2만8783건으로 최근 하루 평균치의 3배에 달했고, 일일 이용자도 57만2877명으로 전일보다 7.5% 늘었다. 여론이 악화하면서 일부 이탈 조짐까지 있자 지난달 29일 카카오는 4분기 중 카톡 친구 목록을 개편 전 전화번호부 형태로 되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쇼트폼에 대한 미성년자 보호 조치도 강화할 방침이다.
시장은 카톡처럼 과거 승승장구했다가 경영진의 일순간 오판으로 어려워진 국내 다른 온라인 서비스 사례를 재조명하고 있다. 카카오가 인수하기 전인 2001년 포털 다음의 e메일 서비스인 한메일은 국내 점유율 약 70%로 독보적 1위를 기록할 만큼 시장을 선점했다. 이 무렵 다음 경영진은 한메일에서 1000통 이상 대량의 e메일 발송 업체에 한 통마다 10원씩의 요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유료화 정책(온라인 우표제)을 추진했다. 그런데 일반 이용자를 겨냥한 유료화가 아닌데도 이용자 이탈이 이어졌다. 대량 e메일 발송이 불가피한 다른 온라인 서비스 사이트가 네티즌 회원 가입 때 한메일 주소 기입은 막는 식으로 한메일에 맞섰기 때문이다.
많은 네티즌이 다른 e메일 서비스에 가입하고, 자연스레 그곳에 접속해 체류하는 시간이 늘면서 한메일과 다음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었다. 다음 경영진은 2005년 6월 이 제도를 폐지했지만 늦은 상황이었다. 다음은 지난해 3%대 점유율(검색 시장 기준)에 머물고 있다.
포털 프리챌도 유료화 정책이 악수(惡手)였던 경우다. 프리챌은 소모임(커뮤니티·클럽) 서비스의 인기로 2002년 회원 수 1000만 명, 커뮤니티 100만 개를 돌파했다. 그러나 2002년 국내 포털 최초로 유료화를 단행하자 이용자가 급격히 줄었다. 뒤늦게 다시 무료화했지만 쇠퇴가 거듭돼 2013년 모든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 반사이익으로 범국민적 인기를 얻은 것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원조 소셜 미디어로 꼽히는 싸이월드다. 싸이월드는 내 집과 내 옷처럼 꾸밀 수 있는 ‘미니홈피’ ‘미니미’, 친구·지인과 관계를 쌓는 ‘일촌’ ‘파도타기’ 같은 혁신성에 더해 프리챌의 실패를 의식한 ‘언제나 무료’ 프로모션 문구로 2000년대 온라인 문화를 선도하며 3200만 명의 회원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PC 기반의 성공에 안주해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에도 UI/UX 개편에 실패, 모바일 친화적 UI/UX의 미국산 후발주자 페이스북·트위터 상륙에 밀려 쇠퇴했다.
카톡 개편 이후 라인 이용자 7.5% 늘어
구매 음원을 MP3 파일로 저장하지 못하게 막거나, 미니미 꾸미는 비용을 올리는 등 과거 대비 과도한 수익화 시도도 이용자 이탈을 부추겼다. 공교롭게 카톡의 성공 뒤에도 경쟁상대가 시장 변화에 뒤처진 것과 그 반사이익이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PC 메신저로 인기를 끌던 네이트온이 싸이월드처럼 모바일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이, 카톡은 2010년 모바일 기반의 UI/UX로 차별화한 메신저로 새 시장을 열면서 네이트온을 넘어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메일·프리챌·싸이월드 등 사례는 온라인 서비스가 수익을 좇는 경제의 영역이더라도, 경제의 규모를 형성하는 구성원인 이용자 편의성과의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합의 또한 중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인스타그램은 내 관심사에 따라 피드를 탐색하는 구조인 반면 카톡은 자동 저장되는 친구가 직장·거래처 등 사회적 필요에 의한 관계인 경우가 많다”며 “이용자는 보고 싶지 않은 피드에 과하게 노출돼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카톡은 대체재를 찾기 힘든 서비스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과거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직장 등의 인맥과 카톡으로 소통하는 상황에서 나 홀로 이탈하기 사실상 힘든 데다, 금융·인증·공문 수신 등 서비스와 연동돼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카톡은 2014년 수사기관의 메시지 내용 검열 논란이나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때도 이용자 이탈 우려가 제기됐지만 기우였다”며 “왓츠앱과 스냅챗처럼 UI/UX 개편으로 성공한 사례도 많기에 카카오가 4분기에 이용자 반응을 살펴 개편 수준을 재조정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