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를 강조하며 '우클릭'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 인공지능(AI) 분야 투자를 위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당대표 연임 도전 과정에서도 AI 산업 육성을 언급했던 이재명 대표가 추경을 통해 관련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이다. 다만 예산안 편성 권한은 야당이 아닌 정부에만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여당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덕 민주당 사무총장은 2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많은 대내외 전문가가 경기부양을 위한 민생 추경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AI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도 시급하다”면서 “민주당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제 회복을 위해 민생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민주당은 최근 들어 전 국민 25만원씩 지급을 핵심으로 한 민생회복지원금 대신 과학기술 분야 투자를 위한 선제 대응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기존 입장이었던 '민생회복지원금'은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의사도 밝힌 상태다.
이는 전날 이 대표가 AI 투자를 위한 추경을 강조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대표가 입장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과감한 개발·투자 독려를 위한 예산 △이공계 인력 대우를 위한 요건 조성을 위한 예산 등이다. AI 추경을 위해 정부·여당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와 양보 등도 약속했다.
이 대표가 적극적인 투자와 인력 확보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만큼 추경 논의 과정에서 AI 분야 기초 인프라 투자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읽힌다.
이 대표는 “정부가 추경에 대대적인 인공지능 개발 지원 예산을 담아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의논하며 협조할 것을 약속드린다”면서 “양보해야 하는 게 있으면 양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AI 분야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래 먹거리 투자를 바탕으로 한 성장을 강조하면서 실용주의를 부각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가 최근 들어 국방·안보 관련 메시지를 자주 내는 것 역시 정치적 안정감 부각을 위한 전술이라는 해석이다.
이 대표는 지난 30일 대전현충원에서 고(故) 채 해병 묘역과 제2연평해전 전사자묘에 참배한 뒤 안보·국방을 강조한 데 이어 이날도 해병대 독립과 전력 강화, 상륙작전 역량 극대화 등을 언급했다. 또 현재 경호처장이 사용 중인 공관을 해병대 공관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다만 AI 추경 편성 여부는 정부·여당의 의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추경을 포함한 예산안 편성 권한은 정부에만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기존 예산안 논의 절차인 '추경안 정부 제출 후 국회 논의' 대신 '선 국회 논의 후 정부 추경안 제출'을 주장하고 나선 상태다. 결국 여·야·정 협의체에서 추경 편성 프로세스 등을 두고 공회전을 거듭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둘러싼 여당 내 혼란을 고려하면 야당에 정치적 이득을 주지 않기 위해 민주당이 먼저 띄운 AI 추경 자체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대통령이 탄핵소추가 되고 국정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정치권의 추경과 관련돼서 논란이 깊어지고 넓어지면 국정안정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여·야·정 협의체에서 어떤 항목에 어떤 예산 항목에 얼마가 필요한 것이고 민생 안전, 취약계층 보호, 경제 활력 등 예산 항목에 국한해 논의를 한 뒤 이름을 확정한 후 정부로 하여금 추경안을 제출하는 것이 속도를 내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