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가 엄마를 얼마로
잘못 읽었다
얼마세요?
엄마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는데,
책 속의 모든 얼마를 엄마로
읽고 싶어졌는데
눈이 침침하고 뿌예져서
안 되었다
엄마세요? 불러도 희미한 잠결,
대답이 없을 것이다
아픈 엄마를 얼마로
계산한 적이 있었다
얼마를 마른 엄마로 외롭게,
계산한 적도 있었다
밤 병동에서
엄마를 얼마를,
엄마는 얼마인지를
알아낸 적이 없었다
눈을 감고서,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
나는 열심히 하면
엄마는 옛날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엄마는 진짜 얼마세요?
매일 밤 나는 틀리고
틀려도,
엄마는 내 흰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시, ‘계산’,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
이틀 사이에 겨울이 왔다. 추위를 대비해 부직포를 덮어놓은 마늘밭과 무밭도 하얗게 눈이불을 덮고 있다. 몇 포기 남은 배추와 쪽파와 갓배추만 희푸르고 희붉은 빛. 엊그제는 눈 오기 전에 쪽파를 뽑다 놀랐다. 황갈색으로 껍질을 둘러쓴 쪽파 씨를 그저 땅에 묻어두었을 뿐인데, 두어달 만에 열 개 이상씩 새끼를 치다니. 매번 놀라지만 또 놀란다. 누가 어미인지 새낀지 모르겠다. 쪽파를 다듬다보니 생각난다. 아이처럼 신나서 상추와 쪽파를 솎던 사람. 봄빛 좋을 때 밭에 나가 빈 땅만 보이면 여기저기 쪽파 씨를 묻던 사람. 초여름 마늘밭 가장자리에 옥수수알을 묻어두던 사람.
그는 내가 큰 수술 마치고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을 때 무거운 배낭 메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던 사람. 땀 배인 배낭에서 호박죽과 찰밥과 포기김치와 겉절이와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파김치와 장조림도 나왔다. 저절로 입맛이 돌았다. 엄마, 엄마, 자꾸 부르면 오래전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돌아온 것 같았다. 먼지털이와 수세미와 걸레와 행주를 들고 다니며 집 안 곳곳을 반짝반짝하게 해놓고 가시곤 하던 그는 내가 스무 살 때 만난 친구의 엄마다. 하도 들락거리며 얻어먹다보니 저절로 엄마라 불러졌다.
그런 엄마가 하루아침에 쓰러져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거쳐 요양병원 계시는 동안, 나도 “아픈 엄마를 얼마로/ 계산한 적이 있었다”. 노후가 든든하지 않은 대부분의 서민들처럼 가난한 친구 때문에, 마른 엄마 곁에서 얼마나 들까 고민하던 어두운 마음이 있었다. 미음 한 숟가락 못 들고 누워계시는 외로운 엄마를 두고. 기관지 절개술 탓에 입 모양으로 호소하는 눈물 고인 말도 알아들었다. 자식에게 민폐 끼친다 생각하신 엄마도 자신이 얼마인지 계산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두운 마음은 “낙엽 위로 악착같이 기어나오던 풀꽃처럼 ” “젖어오던 마음”이다. 가까운 사람이 덜컥 큰병 걸리거나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뭐 이런 날벼락이 있나, 무너지는 마음 밑에/ 피어나는” “다 무너지지는 않던 마음”이다. “같이 살기 싫던 마음”이 “같이 살게 되는” 마음과 동거하는 암도 같고 항암 같기도 한 마음이다(시, ‘어두운 마음’,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
엄마가 돌아가신 지 두어달, 엄마라는 존재가 진짜 얼마인지를 “알아낸 적이 없”고 알아낼 길도 없다. 하지만 그 마르고 작은 체구로 참 열심히 살았고,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자식 같은 젊은이들을 엔간히 먹여살렸다는 것은 안다. 자신에게 주어진 온 삶을 다 떠메고 살다 가셨다. 청청한 쪽파처럼 대단하고 쪽파를 기르는 땅처럼 위대한 모심(母心)이자 모심(慕心)이다. 우리가 아무리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 해도 엄마는 참, 애썼다 하실 게다. 죽을 때까지 “매일 밤 나는 틀리고/ 틀려도/ 엄마는 내 흰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하느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