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저절로 되는 일인 줄 알았다. 자연스레 연애하고 결혼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생기고 아이는 그냥 자라는 줄 알았다. 어릴 적을 돌아봤을 때도 부모의 보살핌보단 나 스스로 자랐던 것으로 착각했던 게 그런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면 더 어른스러워지고 더 지혜가 많이 쌓이는 줄 알았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자 부모로서 아이를 바라볼 때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내가 하는 말이 다 맞고 내가 하는 선택들이 다 옳은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두 아이의 아빠이기 전에 한 가정의 중요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다른 가족들에겐 언제나 완벽하고 강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그런 모습을 더 갖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선 언제나 늘 그런 완벽한 가장이자 아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몸이 피곤하거나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 평소와는 다르게 아이들에게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다. 생소한 경험이었고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급작스럽게 몰려올 때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그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를 풀 때,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게 되고 순간 움찔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너무 부끄러워졌다.
너희를 키우기 위해 발생된 피곤함이라는 변명으로,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게 되고,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모습이 내게도 비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부끄러워졌다.
그런 모습 속에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고민이 되었고, 그 고민 속에서 나의 나약함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우선 나에게도 나약함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먼저였고,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내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내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배워갈 텐데, 하얀 백지에 검은 점을 찍은 것처럼 마치 모든 일들이 망쳐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 또한 나약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후회도 하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아이에게도 아빠라는 존재가 늘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나의 나약함을 오히려 인정해주고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나를 감싸주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오히려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부모라면 무조건 아이들보다 더 지혜롭고 더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면서, 나약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가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싶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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