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라이저 논란 증폭… 국토부, 입장 바꿔 “규정위반 재검토” [제주항공기 무안 참사]

2025-01-01

‘안전구역 미포함’ 입장 고수하다

공항설계지침 위반 지적에 번복

“안전보다 책임 회피 급급” 비판론

로컬라이저에 콘크리트 구조물

국내 14개 공항 중 최소 6곳 확인

전문가 “다른 공항도 신속 개선을”

美 당국, 조사관 2명 증원해 10명

조종사의 비상착륙 대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주원인으로 지목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설치 규정 위반 여부를 두고 갈수록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상 위반이 아니라던 국토교통부는 이와 반대되는 증거들이 쏟아지자 ‘규정 재검토’로 입장을 선회하는 모양새다. 이처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서는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국토부는 제주항공기 무안 참사 브리핑에서 로컬라이저가 종단안전구역에 속하냐는 질문에 “국내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과 주요 선진국 사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다시 답변드리겠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30일 열린 브리핑에서 콘크리트 둔덕이 종단안전구역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지난달 31일에는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한 바 있다. 아울러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등 해외 공항에도 유사한 콘크리트 둔덕이 다수 발견된다며 해외 사례까지 제시했다. 참사 직후 다수의 언론이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는 국토교통부 예규를 근거로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규정 위반’을 언급하자 국토부가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의 대응은 하루 만에 무력화됐다. ‘정밀접근 활주로에서는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이 통상 첫 번째 장애물이 되며,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이 시설까지 연장하여야 한다’는 ‘공항·비행장시설 설계 세부지침’이 제시되며 이전의 주장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토부 관계자는 전날까지 “영어로 하면 ‘including’(로컬라이저 포함)이냐, ‘up to’(로컬라이저 앞까지)냐, 여기서 (의견이) 갈리는 것”이라며 규정 위반이 아님을 고수하다 이날 오전에서야 전반적인 ‘재검토’를 선언했다. 사실상 국민의 ‘안전’보다는 끝까지 ‘책임’을 다투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셈이다.

이번 참사 당시 사고기는 로컬라이저 기반인 콘크리트 구조물과 충돌하면서 기제가 크게 파손되며 화염에 휩싸였다. 콘크리트를 사용한 시설 구조는 20여년 전 무안공항 설계 당시부터 적용됐는데, 당시 설계 및 시공은 국토부와 서울지방항공청의 발주로 1999년부터 금호건설 컨소시엄에서 맡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보헌 극동대 교수(항공안전관리학과)는 “요 며칠간 국토부 직원들이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규정에 명시돼 있다”며 “잘 몰랐을 수도 있고 이게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라 회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항공의 역사는 피로 쓰인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지켜지려면 정부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콘크리트 둔덕이 설치된 다른 공항도 신속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한국공항공사가 관리 중인 국내 14개 공항 가운데 무안을 포함해 최소 6곳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무안공항과 마찬가지로 광주공항과 여수공항에도 콘크리트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돼 있다. 제주공항은 둔덕 없이 콘크리트와 H빔 복합 구조물이고, 청주공항은 일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사천공항은 재질 미상의 50㎝ 높이의 구조물로 지어졌고, 국내 최대 공항인 인천공항은 둔덕 없이 철제구조물로 만들어졌다.

한편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이날 무안 현장에 조사관 2명을 추가 파견했다. 이로써 미국 측 조사팀 규모는 NTSB 5명과 연방항공국(FAA),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 관계자 등을 포함해 10명으로 늘었다.

미국 측은 이번 사고의 심각성과 신속한 다각도 조사의 필요성 등을 고려해 조사팀 규모를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사고조사관 12명을 비롯한 한·미 합동조사팀은 전날부터 무안 현장에서 사고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고기 엔진 제작사 CFMI의 기술 고문 등도 조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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