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 팬덤정치를 넘어 국민통합의 기적을

2025-01-02

기술혁신은 경제·사회·문화·정치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바꿨다. 1941년 흑백TV 상업방송 이후 TV는 ‘이미지 시대’를 열었다. 미국 대선(大選) 사상 최초로 열린 1960년 TV토론에서 무명이던 상원의원 존 F. 케네디가 현직 부통령 리처드 닉슨을 이기는 이변이 일어난다. 당시 미국 가구의 TV 보급률은 87%로 인구 1억8000만 명 중 7000만 명이 TV 생방송을 지켜봤다. 43세의 케네디는 네 살 위인 닉슨보다 훨씬 더 젊고 여유로워 보였고, 닉슨은 초췌한 데다 진땀까지 흘렸다. 척추 통증에 시달리던 케네디는 새로 나온 스테로이드 덕을 봤고, 닉슨은 차량문에 무릎을 다쳐 입원치료를 받은 뒤였다. 이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이겼다고 답했다. 이미지 정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1968년 닉슨은 재도전에서 타운홀 미팅 캠페인으로 당선된다. 1972년 재선에도 성공하나,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의 거짓말이 탄로 나 1974년에 사임한다. 1976년에 부활한 TV토론에서 지미 카터는 정직한 ‘땅콩 농부’ 이미지로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를 크게 이긴다.

동영상 이미지 소셜미디어 시대

확증편향·팬덤정치로 사회분열

새해 ‘심각한 위험 빠질 국가’로

통합 리더십으로 새로운 기적을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에서 시작된 스마트폰은 모바일기기 네트워크의 소셜미디어(SNS) 세상을 열었다. 2010년대 후반 동영상 이미지는 막강한 감응력으로 말과 글을 대체한다. 스티븐 아콘(S Apkon)은 ‘이미지 시대’(2013)에서 동영상 이미지가 21세기 언어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제1 수단이 됐다고 설파했다. 이미지가 주는 느낌대로 움직이는 마음은 때로 이성적 논증과 어긋난다. 이미지 조작은 진실을 왜곡한다. 이미지 시대, 인간의 사고 기능은 퇴화하고 글자도 그림처럼 그냥 보고 넘어가려 한다.

가트너(Gartner)는 2025년 ‘10대 전략기술 트렌드’에서 최초로 AI의 역기능을 제어하는 전략기술을 제시했다. 생성형 AI 발전에 따른 허위조작 정보, 딥페이크 범죄 등을 다루는 허위정보보안(Disinformation Security) 기술이 그것이다. AI가 기술혁신의 블랙홀이 된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에 홀리기 일쑤고, 몇 년 내 가짜가 진짜보다 많아지리라 한다.

2024년, 동영상 채널 유튜브 이용자는 38억 명을 넘어섰고 한국 인구의 88%가 매달 한 사람당 40시간 유튜브를 본다. 전통적 미디어와 달리, 소셜미디어의 뉴스에서는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아니, 사람들은 어느새 그런 구별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자극적 콘텐트의 닫힌 커뮤니케이션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 수용하며 확증편향에 빠진다(에코 체임버 효과). 영화 ‘대부’ ‘러브스토리’ 등을 제작한 로버트 에번스(R Evans)는 “모든 스토리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당신 쪽, 내 쪽, 진실.” 확증편향에는 진실과 당신은 없고 나만 있다.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는 2024년 우리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확증편향을 선정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로 인해 한국 사회가 위험하다는 경고였다. 확증편향에 매몰된 정치는 팬덤의 본래 뜻대로 누구를 특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집단을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팬덤 정치판이 돼버렸다. 극단의 사회분열 상태로는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국정운영은 난맥상이 될 것이다.

지난 연말에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둘로 쪼개진 미국에서 사상 최악의 내전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말살되고 국가가 무너지는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논리적 당위성과 무관하게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확증편향의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던지는 ‘분열의 공포’ 메시지는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 됐다. K시리즈를 자랑하던 국가가 졸지에 정치 실종과 비상계엄 발발, 줄 탄핵과 국가안보 위협, ‘2025년 심각한 위험에 빠질 국가 1위’(Forbes)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무안공항 대참사의 충격과 비탄 속에 을사년이 밝았다. 소리 없는 통곡의 날들을 보내며 “쪼개져서 싸우는 대한민국 정신 차려라”는 하늘의 경고라는 경외감에 두렵다.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첫째 정치권이 서로 양보해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초당적 협의체 구성으로 분열 극복과 국민 신뢰 회복에 나서라. 선거제도와 정치문화 혁신, 정당구조 투명화 등 팬덤 정치의 폐해 극복도 시급하다. 허위정보 확산 방지의 법적 장치와 공공 커뮤니케이션 강화도 미룰 수 없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를 강화하는 교육으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정보 해석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역사·철학·윤리 등 인문학과의 융합으로 기술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앞지르는 전도(轉倒) 현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조속히 국민 저력을 결집해 사회적 병폐를 극복하고 통합을 일구는 새로운 기적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김명자 KAIST 이사장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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