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믿고 싶다

2025-02-06

어렸을 적 즐겨 보던 ‘미드’가 있다. 미국드라마

이다. FBI 요원인 멀더와 스컬리가 각종 음모론적 초자연 현상을 수사하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다. 오컬트, UFO, 유령이 나오는 사건을 파헤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방영당시는 세기말이었다. 세기말의 흉흉한(?) 분위기가 더해져 드라마는 나름 재미있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통한 수사를 하는 스컬리와 달리 멀더는 어린시절 자신의 여동생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는 허황된 신념을 가진 자다. 회차가 거듭되면서 점점 멀더의 신념이 단순한 음모론적 망상이 아닌 진실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포인트다.

을 관통하는 주제는 멀더가 자신의 방에 걸어놓은 UFO 사진 포스터에 담긴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라는 말이다. 외계인에 대한 신념을 가진 멀더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믿는다’(I Believe)가 아닌 ‘믿고 싶다’였는지 이상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미국 사람들 절반 이상은 ‘음모론’을 믿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마도 냉전시대 미국 정부가 CIA 등 정보기관을 통해 벌인 일들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음모론은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간 사실이 없다는 ‘아폴로 계획 음모론’이다. ‘아폴로 계획’은 냉전시대 미국이 소련과 우주탐사에 경쟁을 하면서 본격화 되었는데, NASA가 인류 최초로 달에 인간을 보낸 사건이다. ‘아폴로 계획 음모론’은 나름 체계적인데 달 착륙 영상을 지구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달에는 대기가 없음에도 표면에 꽂힌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는 점, 로켓에 분화구가 생기지 않았다는 점, 달 표면에서 가져온 월석(月石)이 지구에서 채취된 것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근거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완벽히 논파되었다. 최근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얼핏 들으면 말도 안되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지구 평면설’(Flat Earth)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을 ‘평평하다’고 주장하면서 ‘아폴로 계획 음모론’처럼 나름의 근거를 든다.

남녀노소, 특히 학력수준과 별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다. 음모론을 믿는 심리에 대하여 단순 정신질환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사회학자들은 불확실성이 날로 증대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이 처한 불행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분노와 고통을 통제하려는 심리학적 기제에 의해 음모론이 창궐한다고 본다.

무서운 점은 이렇듯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그들의 신념은 거의 종교적 신념에 비할 정도로 강력하다. 문제는 내심의 양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적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외부에 표출한다는 점에 있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불행히도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이자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독히 신봉하였기에 국가 비상사태의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계엄까지 했다.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 당해 있다.” 공화국의 대표자는 대국민담화에서, 헌법재판정에서 계속해서 되뇌인다. ‘나는 믿고 싶다’. 믿는 것인지, 믿고 싶은 것인지 윤석열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되묻고 싶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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