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리비에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2-05

리비에라(Riviera)는 지중해에 면한 프랑스 동남부와 이탈리아 서북부 해안가를 의미한다. 니스, 칸, 모나코 등 세계적 관광 명소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2015년 7월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와 앙티브 사이에 있는 리비에라 해변이 느닷없이 폐쇄됐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여름 휴가 장소로 그곳에 있는 별장을 택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보안 당국으로선 외국 국가원수의 신변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외국 정상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바다 수영을 즐길 권리를 차단해선 안 된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사우디 국왕은 리비에라에서의 일정을 단축하고 일찌감치 다른 나라로 옮겼다.

프랑스 리비에라는 따뜻한 지중해 햇살과 옥색 바다로 유명하다. 19세기 무렵부터 이웃나라 영국의 귀족 등 상류층 사이에서 추운 겨울을 보낼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이곳을 사랑한 인물로 가장 유명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1874∼1965)전 영국 총리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그는 생애 말년까지 틈이 나는 대로 리비에라를 찾아 그림을 그렸다. 2차대전 이후 한동안 프랑스에선 공산당, 사회당 등 좌파 정당들이 높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처칠이 “설령 프랑스가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고 해도 설마 내가 리비에라 바닷가를 찾는 것까지 막진 않겠지”라고 말했다는 것은 오늘날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물론 리비에라의 운명이 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해 항복을 받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한때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 프랑스가 하루아침에 독일 눈치나 보는 소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2차대전 후반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 국가들을 나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침공 작전을 계획했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가를 교두보 삼아 침투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로부터 2개월 뒤 프랑스 남부 일대를 장악한 리비에라 상륙작전이 대표적이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달리 리비에라 상륙작전은 오늘날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중동의 가자 지구를 미국이 점거하고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방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 정상회담을 한 뒤 내놓은 구상이다. 트럼프는 “우리가 가자 지구를 소유할 것”이라며 “가자 지구를 개발하면 ‘중동의 리비에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현재 가자 지구에 거주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팔레스타인 주민 전부가 딴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는 점이다. 미국이 아무리 이스라엘의 우방국이라고는 하나 이쯤 되면 너무한 것 아닌가. 트럼프는 주변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민 주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지만 성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하겠다. 가자 지구가 중동의 리비에라는커녕 중동의 불모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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