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흡혈귀와 내란 우두머리

2025-02-05

18세기 말 프랑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클로드 피노슈.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려졌고, 16세에 왕의 군대에 들어가 장교가 된다. 방탕한 삶을 살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다. 인간이 아닌, 흡혈귀라는 사실을.

그즈음, 프랑스 혁명이 불처럼 일어난다. 왕과 왕비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동안 피노슈는 “농민처럼 입고 혁명가 행세”를 하며 살아남는다. 그리고 자신이 섬기던 왕의 충복으로서 세상의 모든 혁명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는 프랑스를 떠난다. 이후 그가 머물렀던 나라는 아이티, 러시아, 알제리. 노예가, 농민이,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이들이 구체제를 뒤엎은 나라들이었다. 그리고 1935년, 그는 스스로 왕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왕 없는 농민의 땅”을 선택해 그 나라의 군인이 된다. 스스로 지은 이름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였다. 흡혈귀 피노슈, 그러니까 피노체트는 마지막으로 칠레의 사회주의 혁명을 끝장내고 스스로 끔찍한 왕, 지독한 독재자가 된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 <공작>(2023)의 줄거리다. 영화는 역사에 길이 남을 폭압적 통치자 피노체트가 죽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았다는 기괴한 판타지를 펼쳐낸다. 전 세계적으로 독재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신권위주의가 확산되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영생하는 피노체트라는 감각이 그저 단순한 악취미적 농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1973년, 피노체트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으로 수립된 사회주의 정부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로 17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수만명의 시민을 고문하고 학살했으며, 반체제 인사를 납치, 살해하는 등 그야말로 식인 독재를 이어갔다.

그러나 1990년대 민주화 이후에도 그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1998년 영국에서 체포되었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결국 천수를 누리다 2006년 세상을 떠났다. <공작>은 피노슈를 낳은 흡혈귀가 영국으로 가 마거릿 대처가 되었다고 말한다. 명민한 풍자다. 실제로 대처는 그의 망명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녕을 지원했다.

피노체트의 독재 체제는 공식적으로 무너졌지만, 그가 남긴 폭력의 시스템은 여전히 칠레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피노체트는 독재자였지만, 그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칠레 발전에 기여했다”거나 “피노체트를 폄하하는 건 소련 정보기관이 벌인 공작의 유산”이라는 식의 평가가 호응을 얻는 것도 어쩌면 이 덕분이다. 세계사는 사람의 생명을 빨아먹으며 연명과 갱생을 반복하는 독재자의 망령을 끝장내지 못했다.

2024년 12월3일 이후, 나는 종종 <공작>을 떠올린다. 인간 사냥을 끝낸 피노체트가 이 사이에 낀 인육을 손가락으로 후벼 파며 쩝쩝거리던 그 모습이 내란 피의자 윤석열과 그를 옹호하면서 어떻게든 연명하려는 정치인들과 겹쳐 보이는 탓이다. 흡혈귀 피노슈는 위대한 혁명이 일어났던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그 역사를 짓밟았다. 2024년,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재림 흡혈귀와 대면한 건 아닐까.

물론 답답해서 해보는 소리다. 다만 피노체트와 그 지지자들이 남긴 유산 중 하나가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서사였다는 점만은 짚고 싶다. 그는 쿠데타와 독재를 ‘국가 안정을 위한 필수 조치’로 포장하며, 그가 없었다면 칠레가 공산화됐을 거란 주장을 반복했다. ‘계몽으로서의 계엄’을 말하는 윤석열도 마찬가지로 ‘못된 전략’을 쓰는 셈이다.

반복되는 개소리(bullshit)가 가진 힘은 의외로 무섭다. 계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 이유를 이해해주기 시작한다. 그가 ‘국가를 위해 싸운 지도자’란 허구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게 이후 한국정치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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