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린이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요!”
서울 문덕초등학교에 다니는 안수빈양(11)은 5일 ‘어린이에게 좋은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하철에서 다리가 아팠는데 한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줘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며 “나중에 저도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양은 이 경험을 그림으로 그렸다. 인천 서흥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어린이는 “나의 이유를 이해해주는 어른”을 좋은 사람으로 꼽아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노키즈존(아이 동반 출입금지 구역)·잼민이(어린이 비하표현)’ 등 어린이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에 맞서기 위해 나선 ‘유아 맞춤 큐레이션 플랫폼 우따따’가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9일까지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이란 누구인가’를 묻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린이에게 좋은 사람 도감’을 만드는 아동인권 캠페인이다.

지난 4일 만난 ㈜딱따구리의 유지은 대표(37)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해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에게는 ‘세상에 나를 환대하는 어른들이 더 많구나’라는 점을 알려주고,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는 “어린이를 배제하는 시선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따따는 책 <좋은 사람 도감>의 방식을 빌렸다. 일상에서 만난 좋은 사람의 행동을 수집해 도감으로 만들면,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환대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다가가야 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일까지 그림엽서와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캠페인에 참여한 어린이는 250명, 어른은 70여명에 달했다.

어린이들이 보내 온 그림들의 내용은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칭찬해주는 사람”, “날 존중하고 때리지 않는 사람”, “어린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어른”, “가방을 열거나 신발끈을 풀 때 대신해주기보다 해낼 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 등이 꼽혔다. 유 대표는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거창한 것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더 좋은 곳을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어린이의 욕구를 납작하게만 보는 어른의 관점일 뿐”이라고 했다.
유 대표가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내가 누를 때까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다. 어린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스스로 뭔가를 해 볼 수 있게 바라봐주는 여유와 관용’인 것 같다고 유 대표는 전했다.

유 대표는 “이 캠페인으로 어린이 비하·혐오 표현을 지적하는 것만큼이나 ‘어린이를 존중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 혐오·비하를 막기 위해선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어린이를 존중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사회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갖고서 스스로 판단하게끔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3 불법계엄, 대통령 탄핵, 경북 의성 산불사태, 이태원 참사 등 주요 사회·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우따따는 어린이 교육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유 대표는 “이태원 참사 뒤 어린이집에서 핼러윈 행사를 다 취소한 적이 있다”며 “그때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 적이 있는데 어린이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행사를 하지 말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이 행동하며 배울 기회를 점점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어린이들이 직접 부딪혀 보고 설명도 듣고 판단해보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