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소고

2025-05-04

2000년 21세기를 맞은 5월은 청소년의 달이면서 가정의 달이다. ‘자녀사랑 바다처럼, 부모사랑 하늘처럼’ 이라는 표어를 상기하면서 이번 5일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날, 8일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날 유래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관변단체인 대한적십자사가 세계적십자날인 5월8일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각 학교에 결성돼 있던 청소년적십자(JRC)에 퇴직 교원을 방문하여 위로하는 프로그램을 가질 것을 지시했다.

그러던중 1964년 4월24일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는 15차 회의를 통해 5월15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전통적 유교사상을 근거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변경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스승의날 노래를 만들었고 이후 1973년 정부는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을 제정하면서 제외했다.

이에대해 교련을 중심으로 스승의날 부활운동이 전개되고 1982년 5월11일 국무회의에서 5월15일을 스승의날로 최종 학정했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스승의날은 교사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그 유래 역시 관 주도라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그러서인지 전교조는 스승의날과 관련해 특별히 입장을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5월10일을 더 선호했다.

전교조가 5월10일을 선호하는 이유는 민주화의 암흑기였던 1986년 5월10일 YMCA 중등교사협의회에 소속교사들이 ‘교육민주화선언’을 통해 독재 정권의 천병을 거부하고 교사 스스로가 교육의 주체임을 선언한 해이기 때문이다.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스승을 섬기는 일이 효도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효도는 스승에게도 해야 한다. 나라의 임금과 스승과 부모를 한몸과 같이 여겨온 만큼 스승도 부모와 같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낳고 기르고 뒷바라지 하면서 키운 부모라고 한다면, 스승은 사람 되게 바른길로 인도해준 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스승과 부모가 다르다면 한 핏출이 아니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어디 참스승이 있느냐고 항변할 제자가 있을지 몰지만 그런 생각하는 제자가 있다면 그 제자 자신이 깊이 반성부터 해 볼일이다.

아무리 부모답지 않은 부모라 할지라도 역시 부모인 것처럼 다소 스승으로서 그 인품(人品)이 결격되어 있다 손 치더라도 스승은 스승이다.

부모가 다시 잘 되기를 기원(祈願)하는 마음처럼 스승도 제자 잘되기를 바라며 가르치고 인도해 줄 뿐이다.

옛날에는 스승과 같이 길을 걸을 때 석자 뒤로 떨어져서 걸었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런 격식을 차린다는 것은 오히려 스승과 거리가 멀어질 것이고, 형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다정하게 그리고 흉물없이 따뜻한 애정과 마음속에서 우러 나오는 존경심으로 만나 뵙고 아쉽게 헤어질 수 있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기계적인 사회가 되어 교육마저도 산업화 되어 있다. 그래서 제자도 스승도 없는 공장에서 대량생산 위주의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말까지 아오게 되어 있는 모른다.

그러나 시대적 환경과 발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사회가 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사랑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잘못되면 조상 탓”한다는 말대로 잘되면 제 잘난 것으로 여기고 잘못되면 스승이나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은 도처에 많다. 물론 스승은 스승대로 바르게 가르쳐야 하고 제자는 제자대로 옳게 배워야 한다.

2000년 밀레니엄시대에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잘못되면 일중에서 참으로 큰일이 생긴다. “스승은 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 등의 교육 캐치프레이즈처럼 학생이나 교사가 모두 함께 결심하고 자각하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송기선 <전 중등교장, 시인, 두리문학 남원문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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