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연합학력평가(학력평가)를 응시하게 해달라는 학교밖 청소년들의 요청에 경기·부산·서울시교육청이 “응하기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교육청은 “학력평가 대상이 ‘재학생’이고, 시험이 끝난 후 시험지 제공은 가능하며 각자 집에서 풀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밖 청소년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도교육청이 학교밖 청소년들의 교육권을 외면한 채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취재를 종합하면 공익법단체 ‘두루’는 올해 3월 학교밖 청소년 10명을 대리해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학교밖 청소년도 학력평가를 응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이에 경기·부산·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7일 학교밖 청소년은 법령상 학력평가 응시대상이 아니라는 ‘검토 회신서’를 보냈다. 시도교육청들은 “학교밖 청소년은 관련 기관에서 별도 요청을 하면 시험 종료 후 문제지와 정답·해설지를 별도로 제공한다”며 “공개된 채점 결과와 통계 자료에 따라 성적 분포 내 개인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학교밖 청소년에게는 학력평가 응시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다수 학교밖 청소년들은 시험이 끝나면 교육청이나 EBS 홈페이지에서 문제지를 내려받아 집에서 풀어야 한다. 2023년 기준 학교밖 청소년은 16만6500명으로 추산된다.
2001년 정부가 사설 모의고사를 전면 금지한 뒤 시행된 학력평가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돌아가며 문제를 낸다. 고1~3학년 학생들이 연 4회 치른다. 수능과 유사한 형태로 출제되는 학력평가는 고3 학생들에게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출제하는 6월·9월 모의평가와 함께 성적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학교밖 청소년들과 이들의 대리인은 “사실상 ‘집모’(집에서 푸는 모의고사)를 보라는 취지의 답변”이라고 비판했다. 홍혜인 두루 변호사는 “초·중등교육법은 ‘고등학생 재학생에게 학력평가를 할 수 있다’고만 규정했을 뿐, 학교밖 청소년을 학력평가 응시에서 배제하라고 규정하진 않는다”며 “교육청 답변은 아동·청소년 교육을 보장할 것을 명시한 학교밖청소년지원법과도 충돌한다”고 말했다.
학교밖 청소년들은 학교 내신 점수를 확보하기 어려워서 수능 시험에 더 집중한다. 이들은 수능시험 적응력을 키울 기회가 적기에 입시 커뮤니티에는 실제 수능시험장과 같은 분위기에서 시험을 치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학교밖 청소년들이 수시모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청소년생활기록부를 대입에서 채택한 대학은 지난해 기준 14개에 불과하다.
교육청이 평가원 주도의 수능 모의평가는 지원하고 학력평가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23년 학교밖 청소년의 수능 모의평가 신청·접수 거부 사례 1125건을 공개했다. 이후 서울·인천시교육청 등은 지난해부터 청소년 센터나 대학 강의실, 청소년수련관에 감독관을 배치해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시험 장소를 제공한다. 홍 변호사는 “모의평가 지원이 가능하다면 학력평가 시험장을 제공하는 것도 무리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학교밖 청소년들은 시도교육청들이 ‘학교밖 청소년을 사실상 시험에서 배제하는 답변’이라며 비판했다. 청소년단체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는 “교육청이 학교밖 청소년은 공부에 무관심하다고 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번 인권위 진정에 참여한 학교밖 청소년 10명은 모두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중앙정부의 정책 의지도 시도교육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 권익위는 여성가족부에 학교밖 청소년들의 모의평가 응시료 지원 근거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여가부의 학교밖 청소년 모의평가 응시료 지원 예산은 올해도 반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