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000시대 자금 이동 독려
자산 시장 양극화 더 커질 우려
부동산 ‘내로남불’ 정책 논란 속
산업·국가 구조개혁 비전 안 보여
“이재명 대통령은 머니 무브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유튜브에 출연해 부동산에서 주식 시장으로의 머니 무브(Money Move·자금 이동) 정책 기조를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다. 그는 서울 서초구 아파트 두 채, 서울 지역 상가 등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자 아파트 한 채를 팔아 그 돈 일부를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 시세보다 높은 매매가로 내놓았다가 비판 여론에 가격을 낮춰 급매해 눈총을 받긴 했지만 이재명정부 ‘머니 무브’ 공식을 보여준 셈이다.

코스피가 지난달 4000선을 뚫은 뒤 여당의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의 외교 노력과 내란 종식 추진이 대내외 불확실성을 해소”(박수현 수석대변인) “코리아 프리미엄을 실현하겠다는 이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일궈낸 성과”(전현희 최고위원) “청년·서민층의 든든한 희망사다리”(김현정 원내대변인) 같은 축포가 터졌다. 미국 월스트리트가 기침을 하면 우리 주식 시장은 감기·폐렴에 걸린다는 오랜 속설을 감안하면 유례없는 트럼프 정부 관세 위협에도 국내 주가가 상승세를 타는 건 반길 일이다.
초단타 매매를 부추기는 ‘리딩방’은 물론이고 금융권도 코스피 5000의 장밋빛 미래를 예단하기 바쁘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시총 30%를 차지하고 가격이 오른 종목보다 떨어진 종목이 많다는 뉴스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마치 주식 시장이 부의 사다리인 양 장려되는 요즘, 의문이 든다. 주식 시장으로의 머니 무브가 ‘모두 함께 잘사는’ 결과를 보장하나. 부동산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자산의 양극화만 더 키우게 되진 않을까.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내놓은 ‘2023 소득 이동 통계’는 전년보다 소득이 늘어 계층이 상승한 국민이 2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1분위 탈출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29.9%)으로 떨어졌다. 근로·사업소득을 대상으로 한 통계여서 건물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 상속·증여 자산까지 포함하면 계층 간 이동의 벽은 더 두꺼울 수밖에 없다. 주식 시장이 ‘불장’이 된다 해도 소득 하위 집단에는 ‘남의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 소득 1분위 주식 보유 비중은 전체 자산의 1% 미만에 그친다. 소득 상위 계층일수록 돈을 더 많이 버는 구조다.
소득 규모와 관계없이 가구 자산 75%가량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머니 무브 종착지가 부동산이 된다면 최악이다. 젊은 세대에서는 ‘빚투’를 해서라도 코스피 불장에 올라타 돈을 벌어 부동산에 ‘영끌’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정부가 10·15 대책으로 서울·수도권 주요 지역 주택 매매를 사실상 막아놓은 상황에서 이 같은 역류는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가속화할 뿐이다. 자산 불평등 수위는 더 깊어진다.
피터 터친 미 코네티컷 대학 교수는 저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부(富)의 펌프’ 모델을 통해 국가 위기 단계를 진단한다. 엘리트 집단이 더 많은 자산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부의 펌프질이 이뤄지면 사회적 이동성은 떨어지고 체제 균열도 커진다는 논리다. 그는 엘리트 집단이 이미 자산과 정책 수단, 네트워킹을 장악하고 있어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부의 펌프를 작동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금싸라기 땅에 살면서 “나중에 사면 된다”고 국민을 호도하는 ‘내로남불’ 공직자, 내년 선거를 핑계로 보유세 같은 세금 정책은 건드리지 말라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펌프’를 쥐고 있다.
코스피 5000 깃발을 흔드는 건 쉽다. 머니 무브를 통해 어떻게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지역 균형 발전, 자산 시장의 공정성을 꾀할 것인지 비전을 보이는 게 실력이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전직 민주당 의원의 하소연처럼 ‘철학의 빈곤’인지 모른다. 실용주의는 어떤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일 텐데 머니 무브 정책의 최종 목표가 뭔지 보이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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