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버스

2024-12-22

“염 의원님~우리 딸들이 국회를 가고 싶어하는데 기차가 매진되었네요. 방법이 없나요?” 12월 14일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을 앞두고 지인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필자 역시 지난주 딸 결혼식을 마치고 하객들과 더불어 국회에 갔었다.

그러나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이 불성립돼 친구들과 다시 상경할 예정이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었던 것은 20여 차례 촛불집회로 1,300여만의 국민이 광화문에 집결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쪽수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당 정읍·고창지역위원회와 협의 후 탄핵버스 운행을 결정했다. 지역 촛불집회도 중요하지만, 여의도에 집결하여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 진정한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SNS를 통해 탄핵버스 참여자를 공모했다. 여비는 갹출하고 식사는 고속버스 휴게실에서 각자 해결하기로 정했다.

공모 하루 만에 수용 인원이 넘어 기사 보조자리까지 추가 인원을 받아야 했다. 탑승자들 대개가 서로 이름도 성도 몰랐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직 은퇴자부터 사업가, 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가지각색이었다. 동행하지 못한 특공무술관장 재광이 후배는 탄핵쑥떡을 해왔다. 주산수리셈 전북협회장인 김자연 선생은 탄핵커피를 쏘았다. 여의도에 도착할 때까지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이는 무도한 계엄에 대한 분노의 다짐이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거의 40년간 독재와 맞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거룩한 웅변이 아닐 수 없었다.

오후 1시 30분경 국회 근처에서 내려 5번 출구로 향했다. 투표시간이 세 시간여 남았지만 이미 여의도는 인산인해다. 집결지까지 가는 데 인원 점검을 위해 수십 번 가던 길을 멈춰야 했다. 장엄한 민주주의의 순례이자 집결이었다. 2030 청년들이 주축이었지만 남녀노소 천차만별 국민이 함께했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지난주에 이어 필자는 눈물이 고였다.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100만, 200만 국민들의 눈물은 결국 탄핵의 강이 되었다. “오메~ 염의원님! 고생이 많습니다.” 김관영 지사와 조우했다. 정치는 현장감각이고 센스다.

“찬성 204명, 반대 85명, 무효 8명, 기권 3명으로 탄핵안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우원식 의장은 방망이를 힘차게 두드렸다. 순간 여의도는 광란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대국민 축제가 되었다. 어디 서울뿐이었겠는가. ‘토요일밤, 아파트’ 노래에 맞춰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깨춤을 추었다. 2002년 월드컵의 재판이었다. 필자 역시 막춤을 추다가 TV 카메라에 잡혔다. 아마도 2030세대와 어울린 어느 흰머리 노인의 춤사위가 눈에 띄었나 보다.

“오메~시상에 이토록 맛있는 술은 난생처음입니다.” 귀향하는 탄핵버스에서 친구 병철이가 싸준 복분자 탄핵주를 한 잔씩 돌렸다. 물론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이르다. “이제 작은 산 하나를 넘었다.” 이재명 대표는 신중론을 펼쳤다.

그도 그럴 것이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내란 동조세력들이 탄핵 지연작전에 돌입했다. 나라의 존망보다는 당신들의 안위를 위한 수작이며 벼랑 끝 전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제1항과 제2항에 의하면 헌법재판관 임명과 헌법재판소 결정은 국민과 역사 부름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다. 탄핵버스는 24시간 대기 중이다.

염영선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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