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 없다면 ‘동의’인가?

2025-05-18

“점심 맛있는 걸로 합시다. 뭐 먹을까요?” 교내 기관의 신입 직원에게 환영의 뜻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차피 교수님 원하는 메뉴로 정하실 거면서…”라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의 전임자가 업무 인수인계로 남긴 나에 대한 귀띔 중 하나가 “점심 메뉴 물어보기만 하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걸로 정한다”였다는 걸 나중에야 들었다.

정황은 이랬다. 매번 뭘 먹고 싶은지 묻는 내게 직원들은 미소만 지을 뿐 별말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근처 한식 맛집들의 뜨끈하고 얼큰한 메뉴를 돌아가며 제안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그러자고 했다. 나의 ‘부드러운’ 제안과 그들의 동의로 ‘우리’는 그렇게 점심 메뉴에 대해 ‘합의’해온 것이다. 그러니 신입 직원의 그 말이 서운했고, 그래서 변명하려는데, 순간 우리의 ‘그’ 합의가 가진 문제에 대해 ‘현타’가 왔다. “아, 일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먼저 가서 식당 정한 뒤 문자 주세요”로 상황을 모면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제버거 식당 주소가 문자로 도착하자, 그간 ‘우리의 합의’라 여겼던 ‘나의 독단’이 보였다. ‘누칼협’ 아니므로 ‘자발적 동의’로 얻은 합의라며, 알리바이까지 갖춘 나의 노회함도 마주했다.

6·3 대선이 코앞인 지금, ‘비동의 강간죄’ 등 빛의 혁명 주역이 요구하는 공약에 대해 유력 대선 후보조차 말이 없다. 먹사니즘, 잘사니즘 등 억지스러운 조어까지 동원하며 민생은 챙긴다면서, 수많은 여성의 생사를 가른 비동의 강간죄 입법은 민생이 아니라 여기는 것 같다. 혹은 미래요 희망으로 상찬하던 그들이 응원봉 놓고 일상으로 돌아가니, 받들어야 할 민(民)이 아니라 또다시 ‘그때’처럼 페미니즘으로 지지율 떨어뜨릴 ‘불온한 존재’로 보려 하는가.

말할 필요도 없이 성관계는 당사자 간 자발적 동의로 이뤄져야 한다. 이 자명한 이치를 부정하는 자들은 동의 후 ‘의도적으로’ 딴소리할, 예외적 극소수의 여성을 여성 보편으로 확대하려 하거나, “손잡아도 돼?” “키스해도 돼?” 매번 허락받아야 하냐며 동의의 의미를 축소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점심 메뉴 같은 가벼운 결정에서조차 직급·나이·성별 혹은 이 모두가 교차해 만든 ‘힘’의 차이로, 상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뿐 ‘감히’ 가로젓지 못한다. 그런데 하물며 “피곤한데 우리 호텔서 잠깐 누웠다 갈까?” 협박이나 폭행 없이 ‘무심히’ 하는 힘 있는 누군가의 제안에 두려움 없이 고개 저으며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런 경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을 때만 상대와의 합의로 간주한다고, 적극적 동의 없는 성관계에는 비동의 강간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법으로 명시하자는 것 아닌가. 어떤 누군가는 일상의 사소한 결정에서조차 의견 피력이 어려운 문화적·제도적 조건에 있으니, 인격이 개입하는 성관계에서만큼은 법이 그의 취약한 조건을 보완하기 위해 현행 강간죄처럼 협박과 폭행이 아니라, 자발적 동의 여부를 따져 존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과 겨루듯 여성에게 보수적인 일본조차 ‘부동의 성교죄’로 명명한 비동의 강간죄가 한국에선 아직도 어려운가,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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