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여름 울산 HD는 국내 팀 중 가장 바쁘고 빡빡한 일정을 감내했다. K리그에서 다른 구단에 비해 1~3경기를 더 치른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는 장거리 비행과 시차, 무더위 속에서 약 20일을 보냈다. 귀국하자마자 코리아컵과 K리그 일정을 곧바로 소화했다. 무리한 일정에서 비롯된 후유증은 리그 성적으로 나타났다. 울산은 시즌 초반 17경기에서 9승4무4패(21득점 15실점)로 그럭저럭 성과를 냈지만, 이후 7경기에서는 3무4패(9득점 14실점)로 무너졌다.
울산은 지난 6월 미국 조지아·뉴저지·신시내티 등을 오가며 클럽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치렀다. 평균 3~4일 간격으로 강호와 맞나는 강행군이었다. 시차 적응 문제, 장거리 이동에 미국 한여름 폭염까지 겹쳤다. 실제로 울산은 브라질 플루미넨시, 독일 도르트문트 등을 상대로 3전전패를 기록했다. 기본적인 기량 차이도 있었지만, 그런 차이를 버틸만한 체력이 약한 게 컸다.
미국 원정이 끝난 이후에도 울산은 쉴 틈이 없었다. 귀국 직후 곧바로 코리아컵 16강전을 치렀고, 이어 K리그 일정에 복귀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치른 리그 5경기에서는 2무3패(7득점 10실점)에 그쳤다. 체력 부담 위에 추가 피로, 무승 속에 비롯된 분위기 저하 등이 겹친 결과다.
최근 울산 경기력과 통계를 보면, 부진한 원인을 알 수 있다. 울산은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상대를 밀어붙인다. 슈팅수 대비 득점이 적은 것은 여전하지만, 미국으로 가기 전보다 골은 오히려 더 늘었다. 문제는 수비다. 울산 수비는 본래 약간 느슨한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수비 조직력이 더 헐거워졌다. 후반 실점이 많아졌고, 수비 복귀 속도가 느리고 협력 수비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실점 하나하나가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시즌 초반 17경기와 최근 7경기 통계를 보면 체력 저하를 확인할 수 있다. 경기당 패스 수는 540회에서 499회로 급감했고, K리그 최고인 쇼트패스 숫자도 308개에서 280개로 줄었다. 태클, 공중볼 경합, 인터셉트, 클리어링 등 대표적인 수비 지표는 더 크게 감소했다. 결국 경기당 실점은 0.9에서 2골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약한 체력으로는 개인 수비도, 협력 수비도 안된다. 많은 울산 팬들 역시 부진한 원인이 일정 때문임을 알고 있다.
김판곤 감독은 지난해 중반 울산 지휘봉을 잡아 K리그 3연패를 완성했다. 자신이 직접 영입한 선수도 아니었고, 함께한 코치진도 본인 선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서비스맨 정신’으로 선수들에게 최상의 게임 플랜과 훈련 환경을 제공하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물론 뛰어난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서비스맨을 자처한 김 감독 리더십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라고 해서 매번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우승한 다음 시즌에 부진할 수도 있다. 축구는 로봇이 아니라 ‘생물’인 인간이 하고, 모든 게 ‘오차없이 짜여진’ 온라인이 아니라 ‘숱한 변수가 존재하는’ 실제 세상에서 하는 스포츠기 때문이다.
디펜딩 챔피언 울산에 필요한 것은 여유, 시간, 회복이었다. 시간이 지나 체력이 회복되면 울산은 분명히 강자가 될 팀이다. 김 감독에게 필요한 것도 시간이었다. 팀을 리빌딩하려면 선수들의 기존 계약이 끝날 때까지, 울산뿐만 아니라 상대팀 선수를 충분히 파악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김 감독이 울산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1년이었다. 국내외를 오가는 고강도 일정 속에서 선수도, 감독도, 나아가 구단도 모두 희생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