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는 희원(윤혜리 분)이 오래된 필름을 인화하기 위해 사진관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타버린 필름에서 건져낸 두 장의 사진은 과거의 흔적이지만, 희원의 표정에서는 이미 그 사진이 가진 무게가 느껴진다. 이 사진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잃어버린 누군가의 흔적이자 간직하고 싶었던 풍경이다.
희원이 사진 속 장소를 찾아가고, 카메라로 풍경을 담아내며 느낀 감정은 영화의 중요한 정서적 전환점이다. 하지만 희원은 그 카메라를 중고거래로 넘겨버리려 한다. 이는 마치 희원이 그 소중한 기억을 자신의 손에서 떼어내려고 하는 행동처럼 보인다.
중고거래에 나선 지원(윤보라 분)은 카메라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그는 낡은 카메라가 꽤나 마음에 든다. 희원은 차분하게 이 카메라가 40년이 됐으며, 쓰던 주인은 죽었다고 말하고 돈 일부를 돌려준다.
카메라라는 매개체는 희원의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암시한다.
희원이 필름만을 손에 남긴 채 햇빛에 비추어 보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여운을 담당한다. 필름 속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흔적들은 마치 지나간 기억과도 같다. 희원은 그것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떼내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슬픈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영화는 죽은 사람의 것이라는 카메라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대신 희원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관객은 그 감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는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 영화의 미덕으로, 희원의 담담한 표정은 오히려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황태성 감독은 "우리는 때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소중했던 기억마저 잊어버리려 한다"는 기획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며, 기억과 상실, 그리고 그것들을 대면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1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