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수립 기념일(9·9절) 75주년을 맞아 북한은 지난 2023년 9월 9일 0시부터 진행한 열병식에서는 정규군이 아닌 남측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군’이 전면에 나서면서 기존 열병식과는 다른 모습을 연출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의 열병식을 생각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최신의 전략 무기 등장이 관심사인데 당시에는 트랙터나 트럭, 오토바이와 같은 ‘생활·노동’ 장비들로 구성된 ‘기계화 종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룡악산샘물’ 공장 소속 차량과 시멘트 운반차량으로 위장한 트럭의 컨테이너에 방사포가 장착됐고 무장 병력이 탑승했다. 북한 매체들은 이를 ‘위장방사포병 구분대’라고 소개했다. 또 농기계인 트랙터가 무기를 끌거나 트레일러에 노농적위군 병사들이 대열을 맞춰 도열하고 오토바이 수십 대가 행진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조선중앙통신은 기계화 종대와 관련해 ‘신속한 기동력을 갖춘 모터사이클 종대', ‘트랙터들이 견인하는 반탱크미사일종대’, ‘일터의 상공 마다에 철벽의 진을 친 고사포종대’, ‘전투능력을 과시하는 위장방사포병종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행성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민 무장화, 전민 방위체계의 거대한 생활력과 위력한 실체”, “현대전의 그 어떤 군사작전과 전투도 자립적으로 치를 수 있는 민방위 무력”이라는 과장된 표현들로 찬사를 보냈다.


최첨단 무기가 등장하는 21세기에 트랙터와 모터사이클을 활용한 군 부대 조직은 북한만 가능한 시나리오 같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실제 이들 부대가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당장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무인기) 공격을 회피하고 빠른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토바이 부대’의 활용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군 오토바이 부대는 2024년 중반부터 존재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2025년 들어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움직임이 연출되고 있다. 러시아군 오토바이부대는 평야 지형을 활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설치한 장애물을 우회하며 보병 수송을 비롯해 기만 작전이나 정찰 활동에도 동원되고 있다.
ISW는 “러시아군의 오토바이 부대 전술은 향후 타국과의 전쟁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현대판 기병대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래식 부대인 만큼 이 전술은 상당한 희생이 뒤따르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우크라이나 동부 포크로우스크 지역에서 약 100대 규모의 오토바이 부대가 선제적 공격을 감행했지만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저지당하며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이는 러시아 오토바이 부대의 공격 형태가 자폭을 전제로 ‘현대판 만주식 돌격’의 단순한 작전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만주식 돌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만주 지역에서 시작해 전장에 적용한 자살 방식 공격 전술이다.
ISW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오토바이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당초 민간 자원봉사 조직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병의 절반 이상에게 오토바이나 전술용 버기 차량을 보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정전 협상을 앞두고 오토바이 부대를 활용한 새로운 전술로 최대한 많은 영토를 점령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의 군 대변인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과거 적 측면을 노리는 공격은 기병대가 수행하던 전술인데 지금은 그것을 러시아 오토바이 부대가 대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군도 지난 5월 제425 독립강습연대, 일명 ‘스칼라’라고 불리는 자국 최초의 ‘오토바이 돌격 중대’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 부대는 오프로드용 오토바이오토바이와 사륜 바이크 타고 적진으로 빠르게 돌파해 공격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우크라이나군은 부대 창설 배경에 대해 “기동성과 전투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장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현대식 기병대’를 보유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영상과 훈련 사진을 보면 부대 임무 수행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오토바이에는 운전수와 사수 2인 1조로 오토바이에 탑승해 이동하면서 사격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동 중 사격이 쉬운 AKS-74U 돌격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오토바이 돌격중대는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는 이제 신형 기병대를 갖췄다”며 “수백 시간의 훈련을 통해 주행 중에도 돌격소총 사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모습은 러시아군이 최근 자주 사용하는 전술을 본뜬 것이다. 러시아는 드론 공격에 취약한 장갑차 대신 오토바이를 이용한 빠른 기동 돌격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러시아군은 도네츠크 지역 포크롭스크 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240명의 군인과 20대 장갑차 그리고 100대에 이르는 오토바이를 잃었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실제 전투에 나서고 있다는 방증이다.
ISW는 “러시아가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대규모 장갑차 손실 이후 드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토바이 활용을 늘리고 있다”며 “이제는 러시아식 전술을 우크라이나가 수용해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오토바이 돌격 전술은 1차 세계대전에도 활용됐을 정도로 역사가 있는 작전 방식이다. 그러나 재래식 방식인 오토바이 자체가 방호력이 떨어지고 소음도 커 인명 피해가 크게 늘어나면서 러시아군은 2011년 오토바이 돌격 전술을 폐기했다.
하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오토바이 전술이 다시 부활한 것은 이번 전쟁에서 부각되고 있는 ‘드론’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상 병력에겐 오토바이의 빠른 속도와 기동성 덕분에 공포의 대상인 드론을 회피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