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 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다. 때로는 즐거운 일도 있고 때로는 불행한 일도 있다. 특히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제주인들은 불행한 일을 당할 때는 자연물에서 그 방책을 찾곤 했다. 그중에서도 나무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녹나무는 독특한 냄새 때문에 집안에 심지 않았다. 집안에 심으면 냄새가 퍼져 제삿날 조상의 혼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여겼다. 또는 녹나무로 만든 목침 베개를 베고 자면 편안하게 잘 수 있다고 믿었다. 아픈 사람 침상에 녹나무 잎이나 가지를 깔아 그 위에 눕힌 후 방에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면 빨리 회복된다고 믿었다. 물에서 작업하는 해녀들의 물질 도구도 녹나무로 만들어 우환을 예방했다.
조상 묘 이장으로 생기는 우환을 없애기 위한 방책으로는 이장지에 버드나무를 심기도 했다. 묘를 개장하고 수습해 옮긴 후에 곧바로 무쇠와 계란과 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있는 버드나무를 심었다. 무쇠는 불에 타지 않고 계란은 이목구비가 없어 말을 하지 못하고 버드나무 가지는 회초리가 돼 귀신이 맞으면 온몸이 뻣뻣해 움직이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렇게 방책을 쓰면 무덤을 지키는 귀신은 무덤 상태를 알아보려고 해도 알 수가 없어 심술을 부리지 못해 우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제주인들은 나무마다 가지는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책으로 우환이나 악재로부터 치유하려 했다. 무시무시한 가시가 달린 탱자나무나 음나무는 역병이나 액운을 막아준다고 여겼다. 그래서 탱자나무를 집 울타리에 심어 전염병 유입을 차단했다.
이와는 반대로 악귀를 쫓는 나무도 있다. 무환자나무, 화살나무, 호랑가시나무를 들 수 있다. 무환자나무는 불에 태웠을 때 진한 냄새가 나는 데 이 냄새가 사악한 기운을 없애고 오래 살 수 있도록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나무를 연명피(延命皮)라고 했다. 화살나무는 줄기에 넓적한 코르크질 날개 모양이 있어 이것이 마치 악귀를 없애는 화살로 여겼다. 그래서 귀전우(鬼箭羽)라고 했다. 호랑가시나무도 잎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악귀를 쫓는 방책으로 썼다.
그런가 하면 대나무는 신을 불러들이는 용도로 사용했다. 굿의 제차(祭次) 과정에서 심방은 굿이 행해지는 곳곳에 대나무를 세우고 준비한 가지를 흔들며 신을 불러들였다. 또는 한해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는 이팝나무 기상목(氣象木)도 있다. 이팝나무는 쌀밥처럼 하얗게 핀 꽃의 상태를 보고 그해의 작황을 점쳤다. 산딸나무는 하얀 꽃 모양이 마치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 성스러운 나무로 여겼다.
느티나무는 생식능력을 높이는 나무로 여겼다. 외양간에 느티나무 가지를 꺾어다 걸어놓으면 새끼를 잘 낳는다고 믿었다. 멀구슬나무는 집안의 안녕을 지키는 나무로 여겼다. 가정마다 먼 올레에 멀구슬나무를 한두 그루 심어 가정을 보호함은 물론 여름철 시원한 그늘 쉼터로 이용했다.
이처럼 과거 제주인들은 나무마다 가지는 특성을 이용해서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악재를 막거나 우환과 불행을 예방했고 전염병을 차단했다. 집안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나무방책으로 치유했다. 또는 한해의 농사를 예측하고 풍년을 기원했다. 제주인의 치열했던 삶은 나무방책 치유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