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촛불이 있었으니, 이미 기원전 3000년 이집트와 크레타에서 피어올랐다. 귀하디귀했다. 우리 벼슬아치들은 초를 최고의 선물 중 하나로 여겼다. 대사헌을 지낸 이수광 같은 이는 아깝다며 평생 초를 켜지 않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제조기를 만들고, 밀랍에서 파라핀으로 체질 개선을 하며 쏟아져 나왔다. 조선의 초도 권문세가에서 나와 ‘양초’라는 이름으로 서민 속으로 침투했다. 하지만 1879년 나온 전구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후 100여 년. 불 밝히는 용도로서의 촛불은 사라졌다. 하지만 쓸 곳은 또 있었다. 거리였다. 촛불집회가 피어올랐다. 1992년 온라인 서비스 유료화에 저항하는 시위가 우리나라 첫 사례로 꼽힌다. 2016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다. 무려 1700만 명이었다. 이번 겨울,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데 한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야광 응원봉이다. 응원봉만 든 이도 많다. 로이터 통신은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촛불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기원·숭배·소망·축복·헌신…. 제 몸 불사르며 세상 밝히는 촛불의 뜻은 5000년을 죽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