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연출: 진혁/극본: 박지숙/출연: 임지연, 추영우, 김재원, 연우, 손나은 등)은 과거 조선시대의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노비 구덕이(임지연 분)의 삶의 이야기다.
노비 구덕이는 자신을 살리고 죽은 양반 옥태영(손나은 분)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한 구덕이는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살지 않는다. 외지부가 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려고 했던 옥태영의 꿈을 이어받아 살아간다.
조선시대에 노비 수는 전체 인구의 40%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전쟁포로 등이 아닌 동족끼리 노비를 삼았고 재산으로 여겼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양반이 된 구덕이(임지연 분)가 죽은 노비인 "백이는 개돼지가 아니야"라고 주장하지만, 죽은 백이에 대한 보상 가격은 동물인 말보다 낮았다. 당시 노비는 "아무리 나쁜 일도 주인이 시키면 노비는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주인을 해하면 죽게 되지요"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인권이 없었다. 보편적인 인권은 근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등장과 함께 가능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구덕이는 "저는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이 남녀노소 신분과 상관없이 모두 귀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실현되려면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의의 사회이기에 구덕이가 말한 것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3일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3시간만에 국회가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독재와 억압을 연상시키는 공포스러운 단어다. 그런데 2024년 말에 비상계엄을 다시 마주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비상계엄은 <옥씨부인전>의 구덕이가 당할 수밖에 없는 자유와 인권이 짓밟히는 폭력적인 상황을 만든다. <옥씨부인전> 1화에서 구덕이는 양반이 표현하듯이 '개돼지'같은 노비다. 그래서 구덕이가 표현하는 것은 억압되고, '멍석말이'라는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다. 한국인이라면 비상계엄이 어떻게 집단이나 개인에게 폭력적으로 일어났는 지를 경험적으로 안다. 만약에 잘 모르겠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알아보면 된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노비인 구덕이만 자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수용소에서 비참한 삶을 연명했다. 나치수용소에서는 양반이 구덕이 가족을 때리고 죽인 것처럼, 나치가 유태인을 쓸모없는 구더기처럼 여기고 죽였다. 나치수용소라는 환경 안에서 빅터 프랭클은 인간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다. 유태인이 노비 구덕이처럼 개·돼지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게는 삶의 의미를 선택할 수 있는 궁극적인 자유가 있으며, 심지어 나치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삶의 의미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빅터 프랭클처럼 하기는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빅터 프랭클처럼 실존적으로 가능했다면 지독한 독재국가인 북한의 사회체제는 이미 무너졌어야 마땅하니까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사회라는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추구하려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체제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 중에는 빅터 프랭클과 같은 소위 '멘탈갑'이 많지도 않지만, 아동·청소년에게 어떠한 환경에서도 삶의 의미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면 <옥씨부인전>의 노비 구덕이(임지연 분)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는 가족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 도망칠 준비를 한다. "제 꿈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구덕이에게는 꿈이 있다. 즉, 삶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구덕이의 진정한 꿈은 "운이 좋으면 바닷가 작은 집에서 아버지랑 숨어 살 수 있으려나"라는 말에 있다.
실제 양반인 옥태영이 너는 꿈이 뭐냐라고 물을 때, "제 꿈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게"라고 말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덕이의 꿈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옥태영으로 살면서 구덕이의 자기중심적인 꿈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확장된다.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다. 인간은 유능감과 관계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가장 동기부여되고 행복을 느낀다. 구덕이의 자기만을 위한 꿈이 옥태영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원대한 꿈으로 변한 것은 양반 신분이라는 환경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삶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원대한 꿈을 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의 운명을 바꾼 양반 옥태영은 "난 가졌기 때문에 우월한 것이 아니라 가졌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난 아무 노력 없이 많은 것을 가졌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이치에 맞다"라고 말한다. 특권층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관적인 삶의 태도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사회정치적으로 많이 가졌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