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권투선수 김득구는 세계챔피언 타이틀전 KO패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복싱을 했으니 결국 가난한 내가 아들을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맥락을 무시한 채 “내가 아들을 죽였다”는 말만 취한다면 김득구의 어머니는 살인범이 되고 만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부귀도 하늘에 달려있다”는 뜻의 “사생유명 부귀재천” 또한 문자의 표면만 보자면 ‘다 운명이니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뜻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공자 제자 사마우의 형 사마환퇴는 악행이 심했다. 공자마저도 죽이려 했다. 이에, 사마우는 아예 자신을 형제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슬퍼했다. 그러면서도 형의 비명횡사를 염려하자, 공자의 다른 제자 자하가 “사생유명 부귀재천” 즉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부귀도 하늘에 달렸다”고 말하며 위로했다. 그러므로 ‘사생유명 부귀재천’은 ‘절망 중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위로이거나, 오만한 부귀는 영원하지 않음을 충고하는 말일 뿐, 노력이 필요 없다는 운명론이 아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즉 “사람이 할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자”는 말이 적용될 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