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가 지난해 말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를 조명하며 “공항의 입지부터 구조물 설계까지 복합적인 인재(人災)”라고 분석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BC One의 다큐멘터리 ‘왜 비행기는 추락했나: 항공사고 최악의 해, 2025’는 참사 현장을 복원하며 “조류 충돌은 발단이었지만 국제 기준을 어긴 구조물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9일, 태국 방콕을 출발해 무안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을 시도하던 중 조류 충돌을 겪었다. 조종사들은 비상 신호를 보낸 뒤 다시 착륙을 시도했지만, 착륙 장치(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은 상태로 활주로에 접촉했다. 시속 320km로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는 끝단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충돌하며 폭발했고,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이는 한국 항공사고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다.
BBC 다큐멘터리는 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비극”으로 규정했다. 미국과 영국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활주로 끝 250m 지점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었다”고 말했다. 국제 기준상 활주로 끝의 차단벽이나 장비 지지대는 지면에서 7.5cm를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충돌 시 쉽게 부서지는 ‘프랜저블(Frangible)’ 재질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항공기 착륙 유도 장비)는 2m 높이의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세워졌고 전체 구조물 높이는 약 4m에 달했다.
미국 항공안전센터의 숀 프루크니츠키 박사는 “비행기는 활주로를 벗어나도 감속 구간에서 멈춰야 한다”며 “그 둔덕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구조물은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됐다”고 단언했다.
무안공항의 위치 자체도 사고 위험을 키운 원인으로 꼽혔다. 보존생태학자 나일 무어스 박사는 “무안은 활주로 서쪽에 갯벌, 동쪽에 논이 있는 지역으로 새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활주로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환경”이라며 “물새가 몰려드는 곳에 공항이 세워진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고 당시에도 관제탑은 조류가 활주로 인근에 있다는 경고를 보냈고 충돌 후 엔진에서 철새인 청둥오리의 잔해가 발견됐다.
BBC는 “국제 기준을 충실히 따랐다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방송은 특히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RESA)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RESA를 최소 90m, 가능하면 240m 이상 확보하도록 권고하지만 무안공항의 실제 길이는 약 200m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콘크리트 둔덕이 RESA 끝에 설치돼 사실상 보호 구역을 없애버렸다”고 비판했다.
참사 당시 탑승자 일부의 마지막 메시지도 공개됐다. 희생자 박근우(23)씨의 어머니는 착륙 직전 “비행기에 새가 끼어 착륙이 어렵다”는 문자를 남겼고 이어 “유언을 써야 할까?”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그 이후의 두 개의 문자는 끝내 읽히지 않았다.
BBC는 “무안공항 참사는 조류 충돌이라는 불가피한 사고보다 설계와 입지의 문제로 인한 인재에 가깝다”며 “국제 기준에 맞는 구조물 설치와 안전구역 확보가 이뤄졌다면 179명의 목숨은 지켜질 수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방송은 또 영국, 독일, 미국, 스페인, 중국 등 주요국이 2026년까지 모든 콘크리트·강철 장벽을 ‘충돌 시 쉽게 부서지는 재질’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BBC 다큐멘터리는 영국 내 방송 채널 BBC One에서 13일(현지시간) 오후 9시에 방영됐으나 스트리밍 플랫폼 ‘BBC iPlayer’가 지역 제한을 두고 있어 한국에서는 직접 시청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