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식하면 으레 한국인은 돼지 삼겹살을 떠올린다. 삼겹살과 소주 한잔은 한국 사회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방법이다. 삼겹살을 파는 식당은 전국 동네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삼겹살 요리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일제강점기에 탄광이나 공장으로 징용 갔던 사람들이 몸에 쌓인 분진을 없애고자 먹으면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또 1970년대 돼지 등심·안심 등은 일본에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을 저렴하게 유통시키면서 본격화됐다는 설도 있다.
어떤 설이 맞든 삼겹살 역사는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삼국시대 때부터 삶은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대비된다. 짧은 기간에 삼겹살이 외식시장의 간판스타가 된 까닭은 맛도 맛이지만 다른 고기에 견줘 저렴하고 조리법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970년대 산업화와 맞물려 외식업소가 폭발적으로 늘 때 삼겹살은 업주나 소비자 양쪽에게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서민 요리의 대명사였던 삼겹살이 변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6개월을 키워 도축하던 돼지를 열흘가량 더 키우는 190일 돼지와, 돼지고기를 일정 온도와 습도의 공기에 노출시켜 숙성시킨 삼겹살이 인기다. 190일 돼지는 일반 돼지보다 체중이 10㎏ 정도 더 나가는데 육질과 지방이 기존 돼지보다 더 쫀쫀하다. 또 15∼30일 드라이에이징 한 삼겹살의 지방에서는 고소한 치즈맛이 난다.
먹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기존과 다르게 삼겹살이나 목심을 뼈째 내주는 곳이 있다. 갈비처럼 뼈에 붙은 근육·힘줄·지방의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쌈장과 주로 먹던 돼지고기를 고추냉이·명란·멸치젓 같은 소스와 먹을 수 있다. 곁들이는 채소도 상추·깻잎 외에 명이나물·백김치·고사리·미나리가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 허브인 바질까지 등장했다.
육질이 좋은 새로운 품종의 돼지를 개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버크셔K’와 ‘난축맛돈’이다. ‘버크셔K’는 순종 ‘버크셔’를 우리 환경에 맞게 개량한 것으로 한국 고유 품종으로 등록됐다. ‘버크셔K’는 단백질 구성이 촘촘해 구워도 맛있지만 끓이면 국물이 닭육수처럼 맑다. 그래서 샤부샤부가 가능하다. ‘난축맛돈’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 개발한 흑돼지로 제주 재래 돼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맛이 쫄깃하다.
업그레이드 된 삼겹살에 한국인들만 지갑을 여는 것이 아니다. 유명 삼겹살 식당에 가보면 고객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실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겹살은 치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시대, 가난하고 고단할 때 위로를 주던 ‘솔푸드’ 삼겹살이 이제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