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빼주세요”

고수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가 또 있을까. 쌀국수나 나시고렝(인도네시아식 볶음밥)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리에 자주 쓰이지만,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비누 냄새’ ‘화장품 맛’에 비유하며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고수는 건강 효능이 많은 식재료다. 최근 ‘웰빙(well-being)’ 식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수의 건강 효능도 재조명받고 있다.
고수 원산지는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향신료나 양용 식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 그리스 등에서도 고수가 사용된 기록이 있다. 태국, 인도, 베트남, 중국, 멕시코, 포르투갈 등에서 향신료로 널리 쓰인다. 중화권에서는 ‘샹차이’(향채, 香菜)라고 하며, 인도에서는 ‘다니아’(dhania)라고 부른다.
고수에는 비타민C, 토코페롤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세포 손상을 줄이고 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마그네슘, 인, 비타민K 등이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베타카로틴은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칼륨은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는다.
한방에서는 고수를 ‘약’으로 쓰기도 한다. 고수는 ‘풍’을 치료하고, 가래를 제거하고, 신경쇠약을 치료하고 혈압을 낮춰 주는 효능이 있다. 또 소화를 잘 되게 하고 입 냄새를 없애는 효과도 탁월하다. 고수와 사과를 즙을 내 마시면 혈액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으며, 특히 흡연자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수는 위장 내 가스를 줄이고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해 속이 더부룩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챙겨 먹으면 좋은 식재료다. 100g당 열량도 23㎉ 정도로 매우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부기 제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수를 음식에 활용하는 법은 다양하다. 흐르는 물에 잘 씻은 고수를 고춧가루와 다진마늘, 참기름에 버무려 먹으면 아삭한 식감의 ‘고수 무침’이 완성된다. 무채 김치에 고수를 넣어 먹으면 시원한 맛이 난다고 한다. 고수는 가열하면 특유의 향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무침이나 샐러드에 넣어 즐기면 특유의 향을 줄일 수 있다.
또 고수를 사과 등 과일과 함께 갈아 주스로 마시거나 월남쌈이나 쌀국수에 고명으로 활용해도 좋다. 고수 특유의 강렬한 향은 돼지고기 같은 일부 식재의 잡내를 잡는 데도 탁월해 삼겹살과 곁들여 먹어도 좋다.
한편, 고수 냄새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 일부 사람들은 고수에서 잘 마르지 않은 걸레 같은 역한 냄새를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유전자 때문일 수 있다.
미국 유전체 분석 전문 기업 23andME에 의하면, 11번 염색체 속 후각 수용체 유전자인 OR6A2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고수 속 알데하이드 냄새를 감지한다. 알데하이드는 비누, 로션 등에 함유된 화학 성분이다. 실제로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나리 한 포대 씹는 맛이 난다’ ‘비누 맛이 난다’ ‘화장품을 먹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유전자 변이는 고수 선호도가 높은 중동, 남아시아 국가에서 발생 비율이 낮고, 고수 소비가 적은 동아시아 등에서 발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수와 함께 오이의 향과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은데, 이 역시 유전차 차이 때문일 수 있다. 오이는 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쓴 맛을 내는 ‘쿠쿠르비타신’이라는 성분을 생산해 낸다. 사람의 7번 염색체에는 TAS2R38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 중 PAV형을 가지고 태어나면 상대적으로 쓴맛에 민감하다. 부모가 오이를 싫어하면 자녀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PAV형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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