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택시 드라이버’, ‘레옹’.
지금봐도 명작 반열에 들어가는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화 속 주인공들이 너무나 맛깔나게 빈티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빈티지 시장은 갈 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원래 빈티지 시장은 컸는데 뒷북 아니냐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빈티지 옷은 40대 이상의 ‘아재’들의 전유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20대도 빈티지 옷을 구하기 위해 중고마켓을 찾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빈티지 옷은 유행을 타지 않는데다가 튼튼해서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빈티지 시장이 발달된 유럽이나 가까운 일본에 비해 한국의 경우 아직 빈티지 시장의 규모는 작습니다. 당장 일본 도쿄 시부야쪽만 가도 빈티지 의류와 시계, 소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빈티지 시장이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알아볼 빈티지는 군복에서 출발한 빈티지룩 입니다. 말 그대로 과거에 생산돼 수 십년간 살아남은 빈티지와 빈티지 느낌을 최대한 살려 복각한 빈티지룩 모두 포함 입니다. 빈티지룩의 특징과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빈티지 의류도 다뤄보겠습니다.
수상한 시절 입니다. 이 와중에 밀리터리 빈티지를 기사로 다루는게 맞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늦추다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것 같아서 ‘눈치 없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최대한 간단히 리뷰하겠습니다.
◆‘아재’의 전유물은 아니다…‘야전상의’
야전상의(야상)라 불리는 ‘필드재킷(Field Jacket)’은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100% 아는 옷 입니다. 가을이나 초겨울에 입는 외투죠. 오늘날 야상의 디자인 대부분은 미군복에서 출발합니다.
야상을 보면 시대별로 ‘M-43’, ‘M-51’, ‘M-65’라고 분류돼 있습니다. 두 자리 숫자는 생산된 연도를 의미합니다. 즉, M-43은 1943년에 생산되 2차 세계대전에 쓰인 야상입니다. M-51은 한국전쟁 당시, M-65는 베트남전쟁 때 생산됐습니다. 만약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M-65 야상을 입게 되면 명백한 고증오류라고 할 수 있죠.
디자인적으로 보면 차이는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목에 닿는 카라의 모양입니다. 이 때문에 카라가 접히는 M-43 야상은 좀 더 격식있어 보이고, M-65는 캐주얼 해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재질과 지퍼 유무 등도 차이가 있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여백이 부족해서 큰 특징만 말하겠습니다.
야상은 통념상 ‘아재핏‘으로 통합니다. 아재핏이 뭐냐고요? 아저씨들이 주로 입는 옷의 매무새를 말합니다. 대한민국 아저씨들을 절대 욕하는 건 아닙니다. 기자 역시 아재거든요.
지금으로부터 13년전 처음 패션으로 야상을 접했을 때 ‘죽어도 저 옷을 입진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 유행했던 웹툰 ‘패션왕’에서 등장하는 ‘야상오빠’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부끄러웠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돈이 생기는 족족 M-65 야상을 포함해 빈티지룩을 사고 있으니 세상사 모를 일입니다.
빈티지 야상은 너무나 널리 알려졌다보니 영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인 로버트 드 니로가 독특한 패치를 붙인 M-65 야상을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작중 로버트 드 니로가 베트남 전쟁 참전자인 것을 비춰 보면 적절한 선택입니다.
또한 M-43 야상이나 M-51 야상은 2차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를 보면 지겨울 정도로 나오죠. 폴로 랄프 로렌이나 버버리 같은 기성 브랜드에서도 빈티지 야전상의를 재해석해 출시할 정도라니 이 정도면 야상은 아재의 전유물이 아닌 스테디 셀러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도 선호하는 빈티지…‘피쉬테일 파카’
야전상의는 아무래도 포멀(formal)한 편이라 선뜻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용어부터 익숙한 빈티지 ‘파카(Parka)’는 실용성, 범용성에서 우수해 젊은이들도 선호하는 옷 입니다.
파카는 말 그대로 겨울에 입는 옷 입니다. 군대에서도 야전상의와 이른바 ‘깔깔이’라고 불리는 방상내피를 껴입을 수 있도록 품이 넉넉하고 기장이 긴게 특징입니다.
빈티지 파카로 가장 잘 알려진 모델은 ‘M-51’, ‘M-65’ 입니다. 이 기사를 봤다면 저 모델에 적힌 숫자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리겠죠. 이 두 모델의 뒷 모습은 다소 독특합니다. 기장 끝이 물고기 꼬리처럼 갈라진 형태인데요. 기장 끝에 달린 끈을 조이면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구조 입니다. 이 독특한 디자인은 ‘피쉬테일(Fish Tail)’이라고 하면서 오늘날 많은 외투 디자인에 영감을 줬을 정도입니다.
그 중 M-51 파카는 한국전쟁과 사연이 있는 옷 입니다. 1950년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진을 하고 있었죠. 한창 함경남도 장진군 일대에서 진격을 하던 미군 앞에 등장한 것은 쑹스룬이 이끄는 중공군이었습니다. 이 때 벌어진 전투가 역사상 가장 추운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 입니다.
당시 미군은 영하 30~45도의 강추위에서 중공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는데요. 장진호 전투에서 성공적으로 철수한 미군은 이 때의 추위를 떠올리며 M-51 파카를 개발했습니다. 그만큼 보온에 신경을 썼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M-51과 M-65의 가장 큰 차이는 모자(후드)에 있습니다. M-51은 옷과 하나로 이어진 형태라면, M-65는 탈부착이 가능하죠. M-65의 모자의 경우 흰색의 뻣뻣한 털이 부착돼 있어 국내에선 ‘개파카’로 통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빈티지 파카 역시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나베 세이코 원작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 남자 주인공인 츠마부키 사토시가 M-65 피쉬테일 파카를 입고 있죠. 국내에서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M-65 피쉬테일 파카를 보면 “아, 그 옷!”이라고 외칠 정도입니다.
국내에선 M-65 파카의 인지도가 크지만 일본이나 서구권에서는 M-51 파카 인지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일본 드라마인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면 남자주인공인 아오시마 슌사쿠가 항상 입고 있는 외투가 바로 M-51 피쉬테일 파카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마원’ 자켓
빈티지 자켓은 야전상의나 파카보다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옷입니다. 디자인만 봐도 대학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구잠바와 큰 차이가 없죠.
빈티지 자켓은 개성에 따라서 자켓에 알록달록 다양한 패치들을 붙이기도 하는데, 기자는 이 같은 패치를 좋아하지만 배우자는 말 그대로 ‘극혐’할 정도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빈티지 자켓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바로 영화 ‘탑건’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주인공 톰 크루즈와 등장인물들은 작중 내내 항공자켓(Bomber Jacket)을 입고 있는데요. 이 같은 항공자켓은 1·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이 고공에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입던 옷에서 출발합니다. 그만큼 보온성에서 뛰어나죠.
항공자켓은 가죽재질의 무스탕(Mustang Jacket), 얖은 소재의 ‘L-2’ 자켓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은 단연 MA-1 자켓입니다. 국내에선 ’마원’이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죠.
이 MA-1 자켓은 과거에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에서 생산했는데, 오늘날에도 동일한 이름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MA-1 자켓의 경우 재질 특성상 과거에 생산된 원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빈티지 보다는 복각된 빈티지룩을 구입하는게 더 현명한 듯 합니다.
MA-1 자켓은 뤽 베송의 1994년작 ‘레옹’에서 여주인공인 마틸다가 영화 내내 걸치고 있던 그 옷입니다. MA-1 포함해 앞서 언급한 M-65 야전상의, 파카 모두 여성들이 입어도 잘 어울리죠.
마지막으로 항공자켓이 있다면 육지에선 ‘탱크자켓’(Tanker Jacket)이 있습니다. 이 탱크자켓의 특장인 기장을 짧게 하면서 탱크 안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걸리적 거리지 않게끔 했습니다.
이 자켓이 유명세를 타게 된 영화는 2014년에 개봉된 전쟁영화 ‘퓨리’ 입니다. 남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영화 내내 입으면서 인기가 치솟았죠. 물론 기자는 브래드 피트가 아니기 때문에 입어도 그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야전상의와 파카, 자켓 빈티지는 과거 냉전시절을 겪으면서 많은 물량이 풀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호한 옷을 구하긴 어렵습니다. 양호한 빈티지를 구하려면 서울 동묘앞 빈티지 시장을 ‘이 잡듯이’ 뒤지거나 해외직구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뛰고 있죠.
물론 오리지널 빈티지가 주는 느낌이 좋지만, 그 정도로 예민하지 않는다면 잘 복각된 새 상품을 추천합니다. 앞서 말한 ‘알파 인더스트리’를 포함해 ‘리얼맥코이(The Real McCoy's)’, ‘밀텍(Miltec)’ 등의 브랜드가 복각 빈티지룩을 출시합니다. 특히 중국의 ‘브론슨(Bronson)’, ‘기제모(Gizemo)’, ‘밥동(Bob Dong)’은 ‘대륙의 실수’라고 불릴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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