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이건 재난영화가 아니다

2025-12-17

* ‘고빗사위’는 ‘고비 중 가장 큰 고비’ 영어로 ‘클라이맥스(Climax)’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어떤 영화든 포스터를 보고 작품을 고른 다음, 그 전개 양상에 따라 관객을 다소 당황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김병우 감독의 영화 ‘대홍수’ 역시 그렇다. 오는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대홍수’는, 관객들의 혼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본의 아닌 스포일러(?)를 하자면 ‘재난물이 아니다’.

흔히 재난영화하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클리셰(뻔한 설정)가 있다. ‘대홍수’라는 제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시놉시스에 지구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아이를 찾는 어머니의 모성이 그려져 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가 물에 잠기고 엄마는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치며, 그 사이를 욕망이 서린 갖은 사람들이 스쳐 가는 그림이다.

‘대홍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작품이다. 소행성 충돌로 인해 전 세계의 바닷물이 들고 일어나 아파트 십여 층 높이를 집어삼키는 파도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엄마가 애타게 아이를 찾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왜 대홍수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어떻게 대비했는지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홍수’는 2013년 ‘더 테러 라이브’로 밀폐된 공간에서의 긴장감을 배가하는 연출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던 김병우 감독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더 테러 라이브’의 방송사, 2018년 ‘PMC:더 벙커’의 벙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지하철 등 공간이 중요하다. 이번 작품 역시 ‘아파트’라는 공간적 특징이 작품을 지배한다.

어느 날 일어난 주인공 구안나(김다미)의 앞에 해일이 밀어닥치고, 아들 신자인(아역 권은성)과 함께 물을 피하려는 그는 대홍수에서 구안나를 구하려는 인력보안팀의 손희조(박해수)를 만나 함께 한다. 손희조가 그를 구하려는 이유는 그가 인공지능 개발 연구원이고 멸망을 앞둔 인류의 부활을 위한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구안나는 손희조와 함께 탈출하지만 계속 시련이 밀어닥친다. 이 과정에서 구안나는 반복적인 시험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드라마는 재난물이라기 보다는 SF(공상과학)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왜 구안나가 인류를 구할 사람으로 낙점됐는지, 인류는 어떻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부활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성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깊은 철학적 접근이 이뤄진다.

하지만 김병우 감독이 계속해왔던 메시지에 대한 탐구, 이 탐구를 위한 부수적인 장르적 재미는 계속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 테러 라이브’ ‘PMC:더 벙커’ ‘전지적 독자 시점’ 등 설정이나 공간적인 의미는 있지만, 결정적으로 서사를 이끄는 줄기가 부재하다는 평가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느낌은 내내 지울 수가 없다.

일단 작품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관객이 서사 속에서 계속 줄거리를 이어갈 실마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간 이후부터 영화는 배우 박해수의 말처럼 굉장히 ‘암호화’돼 있다. 이 고도의 상징과 은유 속에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에 대한 물음을 참지 못한다면 감상에 큰 문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문턱은 자칫하면 영화 전체를 판단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은 단순한 재난물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 마음에 일어난 재난을 다룬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고,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는 SF물에 가깝다. 물은 구안나의 밖에서도 밀려오지만, 사람의 몸 60~70% 이상을 이루는 필수적인 요소다.

김병우 감독에게 서사의 흐름도 그런 것 같다. 서사의 시작은 관객의 밖에서 밀려오며 신선함을 주지만 결국 영화에 안도하는 것은 관객 스스로가 줄거리에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다. 그 신호가 끊기는 것은 ‘대홍수’를 선택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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