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동물의 수호천사… “온기 느끼게 해주고파” [차 한잔 나누며]

2025-03-30

강릉 ‘쌍둥이 동물농장’ 남우성씨

장애 호랑이 등 1000여마리 돌봐

배우 꿈 접고 아버지 권유로 시작

안락사 위기·열악한 환경서 구조

모두 야외 사육… 시설 확장 역점

“아픔 겪은 친구들 편히 지냈으면”

“버림받았거나 아픈 친구들(동물)을 주로 데려옵니다.”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쌍둥이 동물농장’을 운영하는 남우성(34)씨는 일 년에 한 달을 채 쉬지 못한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 뒷다리를 절룩이는 호랑이부터 안구 적출수술을 받아 한쪽 눈이 없는 낙타류 과나코까지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동물들이 1000마리에 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의 하루는 새벽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30일 세계일보와 만난 남씨는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안락사 위기에 놓인 친구들을 하나둘 구조해 오다 보니 수가 많아졌다”며 “버림받은 친구들까지 포함하면 동물농장 절반에 해당하는 500마리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동물은 살아갈 이유가 있다. 아픔을 겪은 친구들이 이곳에서라도 남은 생을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밝게 웃었다.

동물농장은 아버지의 꿈이었다. 40여 년 전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에게 녹용을 먹이려고 사슴 몇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사슴은 60마리까지 늘어 소규모 농장이 됐다. 2012년 퇴직을 앞둔 아버지는 당시 23세였던 남씨에게 ‘동물농장을 해보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며 배우를 꿈꾸던 남씨는 아버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남씨는 “동물을 좋아한 아버지는 사슴 말고도 타조, 반달가슴곰 등을 사육했다”며 “주변에 별다른 동물원이 없다 보니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이 단체로 구경을 오곤 했는데 참 즐거워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는 이때부터 동물농장에 대한 꿈을 키우셨을 것”이라며 “동물들과 함께한 어린 시절 기억이 저를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정식 개관까지는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동물농장이 문 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키우던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유기는 연간 70건에 달했다. 추운 겨울 우거진 수풀에 강아지를 버리고 가 죽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가 계속되자 남씨는 동물농장 입구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유기보다는 기증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남씨는 “지금은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동물들을 직접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남씨는 몇 년 전 다른 동물원에 조형물을 사러 갔다가 한쪽 눈이 없는 과나코가 좁디좁은 우리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 사연을 물어봤더니 안구에 문제가 있어서 적출수술을 받았는데 무섭다는 민원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씨는 “저희가 잘 키워 보겠다”고 설득한 뒤 비용을 지불하고 과나코를 데려왔다. 과나코는 넓은 우리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지내고 있다.

남씨는 이번 영남권 산불로 죽고 다친 동물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2019년 옥계 산불 당시 화마가 동물농장 인근까지 덮쳤다”며 “다행히 불길을 잡았지만 10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아우성을 치던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했다. 이어 “동물들은 화재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더 많은 손길과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남씨는 애정이 남다른 만큼 사육환경에 신경을 쓴다. 모든 동물들은 자연채광이 드는 야외에서 키운다. 사육장 바닥은 절반은 흙, 나머지는 시멘트로 만들었다. 온통 흙바닥이면 비가 오는 날 동물들 발바닥에 들러붙어 건강에 좋지 않다. 언제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지하수 웅덩이도 설치했다. 그는 “연간 매출은 11억원 정도”라며 “대부분 동물들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수입은 평범한 직장인 수준”이라고 고백했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묻자 남씨는 “좁은 실내 우리에 가둬 둔다는 이미지 때문에 동물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저희 같은 동물농장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27년 12월부터 강화된 동물원법이 적용돼 문 닫는 곳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그때 갈 곳을 잃은 동물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동물농장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강릉=배상철 기자 b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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