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의료진 "기침·두통·관절염 호소 어르신 많아" "상담하며 우는 분도"
70대 이재민 "나랑 남편, 서로가 아니면 의지할 곳 없는 상황"
이재민이 이재민 돌본다…100세 치매노인·50대 지적장애 조카 안타까운 사연
경북 산불 이재민들의 대피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31일 오전, 경북 안동체육관.

머리가 희끗희끗한 정모(73) 어르신은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간식을 받으러 갔다.
심장이 좋지 않은 정 어르신의 이마에는 금방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마스크는 들썩였다.
정 어르신은 경사로에서는 힘에 부치는 듯 엉금엉금 발걸음을 내디디며 휠체어를 밀었다.
그의 남편은 지난해 8월 류머티즘 질환을 진단받아 쉽게 걷지 못한다.
이들은 산불 피해로 집을 잃어버렸다. 집에 있던 각종 약도 모두 탔다.
정 어르신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한숨을 돌리며 "남편이 걷다가 쓰러지면 감당이 안 되니까 휠체어에 태우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먹던 약이 없으니까 원래 다니던 큰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며 "몸이 원래 안 좋았는데 대피소에 마련된 임시 진료소에서 진료할 수 있는 병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나랑 남편은 서로가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100세 치매 어르신과 50대 지적 장애 조카를 돌보는 이재민도 있었다.
임시텐트에서 이들을 돌보고 있던 A씨는 "나를 포함해 가족 네명이 돌아가면서 두 분을 돌보고 있다"며 "집과 농기계가 타서 생계 복구도 정신없는데 돌보는 것도 벅차다"고 말했다.
50대 조카는 손에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 든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손톱으로 긁어 상처가 나 딱지가 앉아 있었다. 낯선 환경에 놓이자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 얼굴을 긁었다고 한다.
A씨는 "장난감을 좋아해서 손에 쥐어만 주면 좋아한다"며 "오늘 자원봉사자들한테 장난감을 조금 얻어왔는데 여기 온 이후로 조카 표정이 가장 밝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유방암을 앓았는데 여기 공기도 좋지 않고 계속 돌보기 너무 벅차다"고 덧붙였다.

대피소에서 머무는 의료진과 심리상담가들은 산불 피해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아픈 고령 이재만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조인옥 재난심리활동지원가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다 보니 상담하러 와서 얘기하다가 우시는 분이 많다"며 "과거 트라우마까지 회상하시며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안동의료원 관계자는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들이 있는데 대피소에서는 일반식만 제공해 식단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며 "산불 연기로 인한 기침·두통 혹은 딱딱한 바닥에서 지내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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