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vs 한동훈
2회 폭탄주와 예의-청년 윤석열의 두 얼굴
1992년 봄, 개나리가 만발한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북쪽에 일군의 젊은이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그 공간에 입성한 사법연수원생들이었다. 연수원 23기 타이틀을 부여받고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을 만끽하던 그 무리 중에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윤석열 연수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적이 되는 이성윤 연수생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문재인 정권의 편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사사건건 맞섰고, 이후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대통령이 된 옛 연수원 동기를 매섭게 공격했던 바로 그다.
하지만 연수원 시절에만 해도 두 사람은 친했다. 윤 연수생이 32세, 이 의원이 30세. 늦깎이 연수생들인 두 사람은 동병상련이었다. 게다가 같은 반, 같은 조였다.
당시 사법연수생은 300명 정도였는데 인원이 많아 몇 개의 반으로 나뉘었다. 한 개의 반은 또다시 15~20명으로 묶인 몇 개의 조로 구성돼 있었다. 두 사람은 5반이었고, 그 반에서도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그 조에는 두 사람 이외에도 윤석열 정부 네 번째 공직 낙마자가 됐던 송옥렬 전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윤석열 정부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을 역임한 윤석희 변호사 등이 소속돼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고 함께 공부하면서 인생의 봄을 만끽했다.
그러나 이성윤 연수생에게는 그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매우 힘든 점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것과 관련해 그가 윤 연수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이 연수생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 그 왜…. 혈뇨(血尿)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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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연수생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 그거? 다 나았어.
아니 어떻게 나았소? 병원 다녔어요?
윤 연수생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아니. 역시 술이 약이더라. 폭탄주를 계속 마셨더니 싹 낫더라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