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다 일어나네요. 사과밭이 평지가 됐습니다.”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서 3966㎡(12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임재순씨(67)는 11월28일 과원에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하얀 눈으로 덮여 사과나무가 보이지 않고 수확을 끝낸 빈 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경기 등 중부지역에 11월26∼28일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로 노지 사과밭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이 기간 화성지역에 내린 눈은 31.6㎝로, 경기지역 평균 적설량인 26.4㎝보다 많았다.
실제 28일 오후 찾아간 임씨의 과수원은 논인지 과수원인지 구분이 안됐다. 과원 전체를 두른 방조망 위에 습기를 먹은 무거운 눈이 쌓이면서 붕괴돼 3.3∼4m 되는 사과나무를 모두 쓰러뜨렸다. 무너진 방조망과 쓰러진 나무 위로 눈이 더 내려 평지처럼 보인 것이다. 방조망을 지지했던 파이프와 과수원 경계에 설치했던 간이 화장실만이 이곳이 과수원이었음을 가리켰다.
임씨는 “2년여 전 사과나무 수목 갱신을 하면서 기존 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무병묘 ‘후지’ 품종으로 850그루를 심어 올해 처음 수확하는 중이었다”며 “올해 사과가 달리면서 새를 쫓기 위해 3000만원을 들여 방조망을 설치했는데, 방조망이 되레 화가 됐다”고 말했다.
임씨가 수목을 갱신한 것은 2022년 8월말이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과수원에 퍼진 탄저병이 전체 사과나무로 확산하면서 당시 추석을 앞두고 수확하려던 ‘홍로’ 사과에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당시 탄저병은 농작물재해보험 대상이 아니라고 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고 수목을 갱신했다”고 밝혔다.
임씨는 이번에도 농작물재해보험에 기대를 걸 수 없다. 사과 농작물재해보험은 사과나무 수령이 4년째가 될 때부터 가입할 수 있어 수령 3년째인 올해는 사과가 달렸지만 농작물재해보험엔 가입할 수 없었다.
임씨는 “올해도 9월까지 폭염이 이어지면서 사과 생육이 더뎌 예년보다 늦게 수확을 해야 해 11월15일 10%가량만 수확하고 30일 나머지를 수확할 예정이었다”며 “수확은 고사하고 심었던 사과나무도 모두 뽑아야 할 상황”이라고 허탈해했다.
방조망 붕괴로 사과나무가 눈 속에 묻히는 재난을 임씨만 당한 건 아니었다. 화성은 물론 수원 등지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농가 대부분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홍승혁 화성해풍참사과영농조합법인 총무(45·서신면)는 “시화방조제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철새가 많은 화성지역에선 사과 수확철이 되면 새 피해가 커 거의 모든 농가가 방조망을 설치한다”며 “처음엔 새를 쫓기 위해 여러가지 퇴치기를 설치했지만 소리 등으로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돼 요즘엔 방조망이 필수 시설이 됐다”고 설명했다. 홍 총무는 “화성지역에서 약 60농가가 사과농사를 짓는데, 이번 폭설로 60% 정도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최상구 기자 sgchoi@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