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사회 경제 전반으로의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AI 기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AI로 발생하는 이슈는 전 세계 공통인 경우가 많으므로 국제적인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AI에 대한 국제 거버넌스 구축이나 공통 규범·표준의 정립은 각 국가의 AI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몇 년간 국제적으로 AI 정책 거버넌스는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7개국(G7),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나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시민사회계에서의 AI 원칙이나 가이드라인 제정 등 AI의 윤리적 사용과 규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 도출 노력이 지속됐다. 둘째, 한국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영국·프랑스 등 각국은 AI 발전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했고, AI 선도국 사이에서는 AI 기술 패권 경쟁의 양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셋째는 AI 규제 법제화 움직임이다. AI에 대한 법적 접근은 혁신 지원과 위험성 최소화를 위한 규제 관점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양자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럽연합(EU)처럼 실제 법제화에 성공한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처럼 15개 법안이 발의돼 논의가 진행 중인 경우도 있어서 각국의 상황에 따라 절충점과 입법 여부는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넷째, AI안전연구소, 국가AI위원회, AI사무국 등 AI의 신뢰성·안전성 확보 또는 AI 연구를 위한 국가 차원의 추진체계를 출범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은 AI 기술혁신을 주도하며 글로벌 AI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글로벌 AI 정책 거버넌스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문에 미국 리더십 교체로 맞게 될 AI 정책 변화는 향후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각국의 AI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AI 정책은 미국의 기술 리더십 유지와 국가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2019년 2월 발표된 대통령 행정명령(EO 13859)을 통해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수립해 AI 혁신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 장벽을 제거하고 AI·머신러닝과 같은 혁신 도구의 채택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해, 시민의 자유, 프라이버시, 미국적 가치,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를 보호하면서 혁신을 가속화하고자 했다.
주요 내용으로 AI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AI R&D를 위한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 자원 확보, AI 표준을 위한 R&D, 적절한 규제 환경 조성, 우수 인력 양성, 국제 협력 추진 등이 있었다. '라이트 터치' 접근(light-touch approach) 방식을 채택해 혁신 촉진을 위해 AI 발전의 장벽을 제거하고 민간의 자율적 혁신을 유도했다. 국가 안보와 경제 경쟁력을 위한 AI 활용을 강조하고, 연방 기관들의 AI 투자와 연구 개발 우선화를 지시했으며, 국가 AI 연구소 설립을 통해 학계, 산업계, 정부를 연결하는 AI 연구개발의 허브를 구축했다. 2020년 11월 미국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AI 적용 규제 지침'에서 AI 기술 개발·도입에 대한 장벽을 줄이는 방법을 고려하고 불필요하게 AI 혁신과 성장을 방해하는 규제 조치를 피하도록 연방 부서에 지시했다.
트럼프는 재선 선거운동 기간 중 AI 정책을 핵심 의제로 부각시켰고, AI 공약은 미국의 AI 기술 리더십 유지와 혁신 촉진에 초점을 맞췄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AI 행정명령이 AI 혁신을 저해한다고 보고 폐지를 예고했다. 'AI 아메리카 퍼스트'(Make America First in AI)를 선언하며,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를 강조했다. 규제 완화와 함께 자유 언론과 인간 번영에 뿌리를 둔 AI 개발을 지지했다. 또 AI를 이용한 미국 시민의 언론 검열 금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가 안보 도구로서의 AI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를 시사했다. 그러나 2기 행정부의 AI 정책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엔 선거운동 기간 중 제시된 공약은 충분하지 않고, 결국 1기 행정부의 AI 정책과 재선 공약, 예상되는 AI 정책 책임자 후보, 선거캠프나 공화당의 AI 정책에 대한 관점 등을 종합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AI 정책을 다각적으로 예측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미국의 AI 선두 국가 유지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1기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시장지향적 접근(market-oriented approach) 방식의 규제 관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직전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정치적 선언의 의미로라도 바이든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할 것으로 보이지만, 행정명령에 담겼던 모든 사항을 무효화하진 못할 것이다. 행정명령 중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유산인 것들도 있고, 새롭게 등장한 거대언어모델(LLM)을 중심으로 한 AI 환경에 맞는 정책들도 있기 때문에 규제 완화와 혁신 촉진이라는 트럼프의 정책 철학이 담긴 새로운 행정명령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라이트 터치 접근 방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 AI 혁신에 대한 규제 부담을 감소시키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 안보와 경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기술로 AI를 인식하고,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 건설,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 핵 에너지 개발 보장이나 신뢰할 수 있고 풍부한 저비용 에너지 옵션 확대 등 AI 개발의 핵심 인프라 확충도 예상 가능하다. 국제 협력 측면에선 미국의 리더십을 공고히하면서, 국가 안보 관점에서 미국의 우월성 확보를 위해 글로벌 AI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다른 국가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AI 윤리와 안전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보다 약화된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행정명령에서 시작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됐던 AI 연구투자, 국가 AI 연구기관 등이나 바이든 행정명령에 포함돼 있지만 트럼프 정책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이버 보안 가이드라인이나 국가안보 관련 권고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국가AI연구소나 AI안전연구소 등은 그 추진 주체나 리더십이 변경됨으로써 그 기관의 성격이나 역할·임무가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해당 기관이나 AI 지원 툴의 필요성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AI 안전과 윤리에 대한 트럼프의 명확한 입장이 없어 향후 정책 결정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 △트럼프 측근들 사이에 AI 규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해 정책 방향성이 변하거나 혼선을 거듭할 가능성 △오픈소스 AI에 대한 접근 방식이 불명확한 점 △트럼프의 불예측성으로 인해 AI 정책이 급격히 변할 가능성 △글로벌 AI 거버넌스 트렌드에 따라 미국 AI 정책의 조정 가능성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LLM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AI 환경이 조성되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견고해져서 후발 주자를 견제하고 지속가능한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신뢰성·안전성 정책의 필요성이 강해졌다는 점 △지난 4년 동안 미국 각 주에서 AI의 위험성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이 진행됐고, 주별 규제가 일관성 없이 파편화될수록 국가 차원의 AI 혁신에 장애물이 될 수 있어서 연방 차원의 일관성 있는 국가 AI 정책 프레임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점 등 트럼프의 AI 정책의 불확실성도 간과해선 안된다.
다만, 연방 차원에서 다양한 이슈에 대해 포괄적인 강력한 AI 프레임워크를 만들기보다는 혁신을 장려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면서 국가의 AI 적용을 장려하는 혁신 지향적 국가 AI 정책 프레임워크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주의 권리(states' rights)를 존중하면서도 국가 안보 등과 같은 트럼프의 핵심 관심사 외에 반독점, 프라이버시나 저작권, 딥페이크 등 논란이 되는 다양한 쟁점에 대해서는 의회에 결정과 책임을 미루면서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스탠스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트럼프 재선으로 인한 미국 AI 정책 변화는 한국에 큰 도전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AI 정책 변화와 국제사회의 동향을 면밀히 살펴서 우리에게 미칠 긍정적·부정적 영향에 따른 시나리오를 만들어 유연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 자체의 AI 경쟁력 확보를 가속화 해야 한다. AI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강력하고 일관성 있는 추진체계를 통해 실천해가야 한다. 특히 민간의 AI 혁신 및 신뢰성·안전성 확보를 위한 자율적·자생적 노력을 지지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AI 기술 발전의 속도와 불확실성을 감안해 유연하고 적극적인 정책 접근이 필요하며,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다른 국가들과도 AI 분야에서의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기술 교류, 공동 연구, 인력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국제 AI 정책거버넌스 변화에 대한 유연하고 선제적 대응과 함께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한국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kjchoi@gachon.ac.kr
〈필자〉최경진 교수는 가천대 인공지능(AI)·빅데이터정책연구센터장이다. 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개인정보보호 법 연구자로 관련 법·정책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한국정보법학회 수석부회장,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도 역임했다. OECD 인공지능, 데이터 및 프라이버시 전문가그룹(Expert Group on AI, Data, and Privacy)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고 있으며, 데이터와 ICT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법·제도 개선과 정책 추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