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으로 예술을 한다면, 표현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도예 작가 신상호(78)가 그 답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내놓은 것 같다. ‘무한변주’. 전시 제목 그대로 신상호는 흙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예술을 60여 년간 섭렵하고 변주해냈다. 전통적인 도자기를 빚었던 그는, 도자기로 조각을 만들더니 도자기를 이용한 그림인 ‘도자 회화’까지 개척했다.
전시는 신상호의 예술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신상호는 1965년 홍익대 공예학부에 입학하고는 경기 이천에 있는 선배 작가 정규의 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에서 한국 전통 도자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던 때였다. 신상호의 변주 본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휘된다. 1970년 일본 나고야에서 가스 가마를 들여온 것이다. 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던 전통 가마를 대체하려고 한 그의 움직임이 전통을 해친다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다.
전시 개막을 앞둔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난 신상호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미래를 좇아가는 것”이라며 “과거의 방법만을 주장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통 도자기를 굽던 신상호는 과학의 힘에 주목해 가스 가마를 택했고, 가스 가마는 지금 도예가들에게 표준이 됐다.

변주 본능은 그가 빚어낸 작품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1984년 교환교수로 미국 땅을 밟은 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발견하고 1986년부터 도자 조각 ‘도조’(陶彫)를 선보였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 조각처럼 빚은 흙이 가마를 거쳐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다. ‘꿈’ 연작(1990~1995)과 2000년 이후의 ‘아프리카의 꿈’ 연작이 대표작이다.
변주의 다음 악장은 건축이다. 건물 실내외에 자신의 조각 작품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구워 만든 작품을 건물의 재료로 썼다.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터미널 승강장과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외벽에서는 길게 뻗은 그의 형형색색 ‘구운 그림’을 볼 수 있다. 신상호는 콘코디언 빌딩에 4층 높이로 세워진 구운 그림을 가리켜 “처음에는 (꼭대기까지) 다 올라가려고 생각했는데, 설계하는 사람들이 경험이 없다고 해서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구운 그림은 다시 건물을 떠나 전시장의 회화가 된다.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부착한 뒤, 아크릴 물감을 칠했다. 신상호가 지금의 작업장이 있는 경기 양주 장흥면 부곡리로 옮겨 오자 심은 느티나무가 장성한 뒤 노란색으로만 6장의 패널에 표현한 ‘생명수’(2017), 하늘 아래서 바라본 나무의 흔들림을 표현한 ‘묵시록-녹’(2024)은 규모도 클 뿐 아니라 흙에서 비롯된 울퉁불퉁한 질감, 흩뿌리거나 점으로 찍어 점묘화처럼 묘한 색이 눈길을 끈다.

여든을 바라보는 신상호의 이번 변주는 독주나 합주라기보다는 교향곡에 가깝다. 작품을 한두 점씩 주목하도록 한 일반적인 도예 전시에 더해, 신상호의 이번 전시에는 여러 점의 그릇이나 조각 등이 한데 모여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도조를 시도했다가 잠시 그릇으로 회귀했던 1990~1994년의 분청자기 수십 점은 ‘분청’이라는 이름 안에 한 작품으로 배치됐다. 전시실을 오가는 통로이기도 한 과천관 중앙홀에 전시된 ‘아프리카의 꿈-토템’(2000~2002)나 실내 전시실의 ‘구조와 힘-이드’(2003)는 아프리카에서 본듯한, 하지만 실제 동물과는 형태가 조금 다른 상상의 존재가 생동감과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그가 여러 도예 실험을 이어가는 동안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낸 뒤 작업실에 방치됐던 것들 중 ‘무제’(1986)처럼 새 작품이 돼 첫선을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왜, 다양한 변주 중에도 흙을 놓지 않았을까. 신상호는 “흙은 대단히 좋은 재료다.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라며 “아이디어도 고갈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하고 (창작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도전 정신을 가지면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흙을 통한 끊임없는 변주에 대해 “어떤 방법을 찾았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하는 것은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항상 반항하고, 또 거기서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쫓아가고, 쫓아가다 보면 또 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29일까지. 과천관 통합권 관람료는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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