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제조업 부활 등 정부의 핵심 정책을 이행하는 데 있어 필수 제반조건은 전력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동시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믹스(전원계획)가 필요합니다“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전력은 산업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전원 계획에 있어 재생에너지를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RE100 산단,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 확산 등 발표한 주요 에너지 정책이 모두 그랬다.
당초 재생에너지와 함께 전원의 한축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 원전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의 역할이 확정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른다.
윤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부가 AI 대전환과 제조업 혁신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는 상황에서 전력공급 수단은 재생에너지만 언급하고 있다”면서 “해외 사례 등을 감안하면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믹스없이 재생에너지 일변도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마존 등 해외 빅테크 기업도 소형모듈원전(SMR) 기업에 대한 투자로 전력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 전력 공급의 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또 석유화학, 철강 등 기존 주력 산업 재편이라는 과제를 언급하면서도 “제조업 나아가 국가 전체 산업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원전이 에너지 믹스에서 일정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의 생존 차원에서도 원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미국과의 원전 협력과 관련해선 “미국 입장에서 원전은 조선 분야만큼이나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산업”이라면서도 “국민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계약 조건 등은 개정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IP) 관련 문제 제기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반면 그들도 해외 사업 수주 시 우리의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며 “양국이 협의해 나선 것도 이런 상황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만, 장기간 기술료 제공하고 이후에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사업 이익을 공유한다는 등의 내용은 누가 봐도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내용은 협의를 통해 최대한 동등한 조건으로 개정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한미 양국의 주요 의제로 부상한 원자력 협정 개정을 두고는 한국 정부가 사용 후 핵연료와 관련한 정책 방향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은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재처리'와 핵연료 자체 생산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를 위해 미국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내에서 한국의 핵연료 활용 효율성을 재고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와 관련해 정부의 명확한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농축과 재처리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국내 법령과 인허가 요건 준수'를 명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관련 인허가 제도 등 명확한 국가적 기준을 수립하지 못했다.
윤 교수는 “협정의 핵심은 선행 부문에서 농축, 후행 쪽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재활용 기술”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먼저 명확한 관련 정책과 계획을 제시해야지 무조건 규제부터 풀어달라고 하면 협상이 진전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명확한 로드맵과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