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상호관세 부과 이후 한국의 대응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1977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내린 결정이다.
캄보디아(49%), 베트남(46%), 인도네시아(32%), 중국(34%, 펜타닐 관세 20% 별도), 대만(32%), 인도(26%), 일본(24%), 유럽연합(EU·20%) 등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 57개국은 최악의 상황이라며 당황한 모습이다. 상호관세가 관세를 포함한 각종 비관세 장벽과 환율, 부가가치세 등을 고려해 무역적자를 분석한 결과라고 하지만 계산은 단순했다. 미국의 무역 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눠 계산했다.
미국, 57개국에 상호관세 부과
대공황 촉발했던 관세법 데자뷔
WTO 원칙에 배치된 관세 폭탄
자유무역 질서 와해 우려도 커져
미국 아닌 타국가와 FTA 유효
보조금 지급 산업 정책 동조해야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원래의 모습과는 정반대다. 상호관세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등장한 개념이다.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관세를 낮춰 서로에게 이익을 주자는 취지였다. 1933년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이듬해 6월 12일 ‘상호무역 협정법’을 통과하고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폐지했다.
‘WTO 무용론’ 트럼프, 탈퇴 주장도
『월스트리트 제국』을 쓴 경제사학자 존 스틸 고든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대공황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1930년 6월 17일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의거해 당시 미국은 2만여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매겼다. 국제 교역이 급격히 줄고,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감소와 실업률의 급격한 상승으로 유례없는 대공황이 발생했다. 트럼프의 대대적인 관세 폭탄이 약 100년 전 대공황을 심화시킨 보호무역 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다.

대공황의 데자뷔라면 과장일까. 상호관세 발표 이후 첫 거래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약 5.97% 폭락했고 다음 날도 5.82%의 낙폭을 보였다. 세계 교역 감소와 물가 상승, 경기 불확실성으로 기업 투자가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제 정책 불확실성 지수도 사상 최고치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에 맞서 중국이 34%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갈등도 더 격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인해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질서를 와해할 수 있다는 시각도 팽배해졌다. 상호관세와 보편관세 등이 WTO의 각종 원칙과 배치되거나 어긋나기 때문이다.
개별 협상으로 국가별 차등 관세를 적용하는 상호관세는 WTO의 최혜국대우(MFN) 원칙과 정면충돌한다. MFN 원칙에 따르면 WTO에 가입한 회원국에 부여한 우대 조치를 다른 회원국에도 차별 없이 부여해야 한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WTO의 최혜국대우(MFN) 조항으로 미국이 수입품에 세율을 낮게 적용한 것이 무역 적자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전 세계 185개국에 최소 10%를 부과한 보편 관세는 자국산과 외국산 제품을 차별하지 말라는 WTO의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 원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트럼프의 전방위 관세는 단순한 보호주의 심화를 넘어 다자 무역질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등 기존의 양자주의 협정에 대한 존중도 폐기된 인상이다. 한국이 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MFN 관세율은 13.4%지만, 미국과 FTA 체결로 대미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지난해 기준 0.79% 수준에 불과하다. 동맹국인 한국이 자국보다 약 4배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미국 측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높은 비관세 장벽으로 대미 흑자가 5년 사이 3배 늘어났다며 불공정 무역 관행과 부정행위로 몰고 가는 것은 도가 지나친 처사다.
이처럼 WTO 체제와 FTA를 무력화하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WTO 체제의 한계와 그에 대한 미국의 불만에서 기인한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부터 ‘WTO 무용론’을 주장하며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필요하다면 WTO를 탈퇴하겠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는 중국이 시장 개방에는 미흡하면서 WTO 체제를 통해 막대한 부당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WTO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개도국) 사이 양분법을 쓴 결과 일부 WTO 회원국이 개도국 지위를 누리며 불공평한 혜택을 얻은 만큼, 이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확증 편향은 트럼프 2기에 더욱 공공연해졌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숱한 예외 규정 남발로 불공정한 무역 행위 제지에 한계를 드러내자, 1995년 탄생한 WTO는 무역 장벽을 완화하고 새로운 무역 규범을 만들어 다자간 무역 협상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WTO도 많은 한계를 노출하며 그 위상이 흔들렸고 결국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정 경쟁 방기했다고 비판받는 WTO
특히 미·중 패권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WTO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개도국 특혜는 빛이 바랬다. 중국은 비시장경제국(NME) 지위를 15년간(2001~2016) 적용받는 조건으로 2001년 WTO에 가입했고 2016년 말 미국·EU는 중국에 대한 시장경제지위(MES) 인정을 거부했다. MES란 원자재와 제품 가격, 임금, 환율 등 한 국가의 경제 활동이 정부의 간섭이 아닌 시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제 체제임을 교역 상대국이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비시장 경제 국가로 규정하고 반덤핑 조사와 관련해 시장 경제 국가와 다른 기준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국가 주도·비시장적 경제 관행이 강화됐고, WTO가 교정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중국의 비시장적 보조금 정책으로 철강과 알루미늄, 태양광, 어업 등 주요 산업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 유수 기업조차도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은 산업보조금과 기술 이전 강제,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지속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위반하는 중국에 불만이 많지만 WTO는 무역 분쟁 해결에서도 책임을 방기했다. WTO 분쟁 해결 시스템은 사건 해결에 수년이 걸리는 탓에 악명이 높다. 사실상 ‘지연된 정의’인 셈이다. 심지어 WTO 내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 기능은 2019년 12월 11일 정지됐다. 총 7인의 상소 기구 상임위원 중 6인의 위원이 퇴임했지만 후임 위원이 선임되지 않아 기능이 마비됐다.
한·미 FTA 효용 기대 못하게 돼
트럼프의 상호 관세 부과로 세계 교역 시스템은 만신창이가 됐다. 기존의 무역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향후 달라질 질서와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고민해야 할 때다.
첫째 미·중 패권 전쟁으로 WTO는 대수술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통상 정책 주권 수호라는 측면에서 현 WTO 체제가 중국과 같은 거대 개도국에 혜택을 주는 처사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미국의 참여가 지속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WTO 체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WTO가 수호하는 자유무역은 한국 경제 번영의 조건이다.
둘째, 미국과 추진한 각국의 FTA는 당분간 그 효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다만 USMCA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상품에는 상호관세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은 상호관세만 부담하면 되지만 일본과 EU, 중국 등은 기존 관세에 상호관세를 더해야 하는 만큼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이익인 측면이 있다. 미국은 양자 FTA보다는 자국을 대상으로 한 무역투자 장벽 개선에 보다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각자도생으로, 때로는 뜻 맞는 국가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생존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와의 FTA는 여전히 유효하다. FTA를 통한 경제영토 확장은 계속돼야 한다.
조선·SMR, LNG 수입 패키지 활용해야
셋째,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투자·수출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산업 정책이 주류가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우리 역시 동조할 수밖에 없다. 세계는 ‘규범’과 ‘안보’를 내세워 수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국외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옮기는 리쇼어링 기업을 지원해주는 정책에 한창이다. ‘한국형 경제 안보’ 개념을 설정하는 노력이 긴요하다.
넷째, 미국이 비관세 장벽을 포함해 무엇을 진정으로 교정하기를 원하는지 제대로 소통해 접점을 찾아 상호관세를 대폭 낮춰야 한다. 한·미 FTA 체결국임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원하는 조선 분야와 소형원자로(SMR) 협력, LNG 수입도 전략 패키지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교역액이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100년 전의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미국의 관세 전쟁은 실패할 확률이 더 높고 제조업 부활을 이루기도 어려운 듯한 데다 미국 소비자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무기로 제조업을 휩쓸게 놔두는 것도 옳지 않다. 당분간 세계 교역의 축소와 경제 성장 하락은 불가피하고 우리가 받는 타격도 상당할 것이다. 국제 경제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중심을 잡고 잘 버텨야 한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