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거룩한 밤'-'파과', 한국 영화 후퇴 혹은 답보의 현주소

2025-05-03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5월 황금연휴를 정조준한 영화들이 4월 말 일제히 출사표를 던졌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썬더볼츠*'가 MCU의 부활을 노리며 개봉했고 한국 영화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파과'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보다 관심이 가는 건 한국 영화들의 성적표다.

최근 한국 영화계는 장기 산업 침체로 인해 체질 개선에 나서는 분위기다. 국내 5대 배급사 모두 대작 위주의 관행을 버리고 제작비 100억 미만, 손익분기점 200만 명 이내의 중소형 영화 제작으로 체급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두 편의 한국 영화 역시 제작 규모로 보면 중형 크기의 영화다. '거룩한 밤'의 손익분기점은 200만, '파과'는 130만 명이다.

다만 앞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비슷한 사이즈의 '승부', '야당'과 비교하면 두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는 크게 떨어진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와 '파과'는 퇴보 혹은 답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작품처럼 보인다.

◆ '거룩한 밤', 안일한 오컬트…악귀과 싸우는 마동석은 허무맹랑

'범죄도시'라는 네이밍은 강력한 흥행 패치다. 어떤 수준으로 만들어진다 해도 대형 흥행은 떼놓은 당상처럼 보일 정도다. 코로나19 기간에 개봉한 '범죄도시' 3편과 4편의 완성도와 재미가 전의 두 편보다 못했음에도 보란 듯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마동석에게 '범죄도시' 시리즈는 치트키다. 그러나 '非 범죄도시' 영화에서 마동석은 계속해서 실망스럽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오컬트 액션을 표방하는 영화다. 마동석은 이 작품에서 악을 숭배하는 집단을 때려잡는 '거룩한 밤'팀의 리더 '바우'로 분했다. 강력한 주먹을 가진 능력자지만 어수룩한 캐릭터로 웃음을 자아낸다. 이야기도 장르도 다른 작품이지만 익숙한 향기가 난다.

제작진은 '거룩한 밤: 더 제로'라는 제목의 웹툰을 통해 영화가 설명하지 않은 바우의 전사를 소개한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흥미롭지 않아 웹툰으로 관객의 관심이 확장될 일은 없어 보인다.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는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했거나 존재할 만한 흉악 범죄자를 때려잡으며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거룩한 밤'의 바우는 사람이 아닌 악령과 싸운다. 싸우는 대상이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다 보니 마동석이 수행하는 액션의 리얼리티가 크게 떨어진다. 오컬트 장르에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했다고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판타지는 경찰이나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악령의 존재가 아닌 만능키인 마동석의 주먹이다.

'파묘'의 천만 흥행으로 흐름을 타기 시작한 오컬트 장르 인기에 편승한 기획처럼 보이지만 '거룩한 밤'은 '파묘' 훨씬 이전인 2021년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관객이 창고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일은 없다. 그저 재미로 평가할 뿐이다.

'거룩한 밤'은 안일한 기획과 부실한 각본으로 관객의 기대치를 배반한다. 구마의식 단계마다 개념을 설명하는 식의 대사도 이야기의 맥을 끊는다. 이 영화에서 필요한 건 생소하고 이해하기도 어러운 개념을 입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 언어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엔 오컬트에 대한 이해와 퇴마 과정의 로직이 없다. 여기에 수준 미달의 CG와 사운드 등 기술적 아쉬움도 크게 다가온다.

◆ '파과', 원작 매력 못 살린 각본…배우는 빛났다

기본적으로 성공한 소설의 영화화는 창작 각본을 기반으로 한 영화보다 어렵다. 소설을 사랑한 독자들의 냉철한 평가에 직면해야 하며, 비독자 관객에게는 영화만의 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흥미로운 제목의 '파과'는 '흠집이 난 과실'을 뜻하는 말이다. 여자 나이로 16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조각이 킬러 일을 시작한 나이와 같다.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이혜영과 김성철이 주연을 맡았다.

파과의 또 다른 함의는 '가장 빛나는 시절'이다. 영화는 조각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로 보여주지만, 과거가 조각의 화양연화라거나 그녀가 그리워하는 시절은 아니다. 부모를 잃고 떠도는 16세 소녀가 손톱이 되고 조각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선택과 행동을 보여준다. 이는 늙은 조각이 삶의 의미를 찾고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밑바탕이 된다. 그러나 반복적인 교차편집이 아닌 압축적인 오프닝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더 괜찮은 선택이 됐을 것 같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인물의 내면 심리 묘사에 공을 들였다. 다만 소설의 아름다운 문장이 영화에선 어색한 문어체 대사가 되는 순간이 많다. 소설의 언어와 영화의 언어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 소설의 문학성을 영화의 미학으로 변환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임을 보여준 결과물이다.

영화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수십 가지 버전의 시나리오를 써가며 인물에 대한 변주와 영화만의 매력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으나, 상업성에 대한 부담을 적잖이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고민의 결과가 앞서 성공한 몇몇 장르물에 기댄 설정이나 무드라는 것이 아쉽다.

60대 노년 킬러를 연기한 이혜영의 연기는 훌륭하다. 등장만으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품격이 느껴지는 음성, 미스터리와 사연을 품은 눈빛 연기, 고독과 우수가 느껴지는 뒷모습은 오히려 스턴트로 완성된 액션보다 빛난다.

영화 초반 조각의 방역 과정을 담은 지하철 신처럼 늙은 육신에 걸맞은 액션 설계를 했다면 영화는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영화적 볼거리로서의 액션과 서사의 완성도로서의 액션이 충돌하며 인물과 액션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폐 놀이동산에서의 화려한 액션은 중반까지 잘 지켜온 영화의 톤앤매너를 일순간 서커스에 가까운 활극으로 만든다. 물론 영화에도 마이너스다.

'파과'는 한국 상업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60대 여배우를 영화의 중심으로 내세웠다. 이혜영이라는 멋진 배우를 폭넓게 활용하며 액션 장르에 품격과 무게를 더한 것만큼은 인상적이다.

ebada@sbs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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