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6·3 조기 대통령 선거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치른다고 상상해보자. 규칙은 이렇다. 먼저 정당이 경선을 치를 때부터 후보들의 이름·나이·경력 등 정보는 당 선거관리위원회에만 제출하고 당원·국민에겐 비공개로 한다. 후보자는 후보1·후보2 등 코드로만 구분하고, 공약·가치관·비전 등은 서면·영상만으로 알리게 해 역시 후보 신상을 모르게 한다. 당 선관위가 정책자료를 정리해 당원 및 국민에게 공개하고, 토론회·질의응답도 정책 내용으로만 진행한다. 인공지능(AI) 음성·영상 등을 활용해 신상 노출을 막고 후보들의 사회관계망(SNS) 활동 등 외부 홍보는 제한한다. 대선뿐 아니라 총선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다소 황당한 제안이지만 기대되는 면이 있다. 바로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 방지다. 지지할 후보는 고정해두고 무슨 공약을 하든 긍정적으로 해석해, 유권자 본인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가치보단 사람에 충성하는 결과를 낳는 게 아묻따 투표다. 만약 블라인드 선거로 평소 지지하던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에 투표하게 됐다면 이제 아묻따 투표와는 결별이다. 유권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새삼 자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혐오도 완화할 수 있다.
정치 신인을 발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후보·정당의 인지도가 아닌 정책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니, 소수자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후보가 정계에 진출할 수 있어서다. 후보들도 정책 개발에 주력하고 무엇보다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볼 이유가 사라진다.
자 이제 실전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A 후보는 “기초연금을 70만원 인상하고, 연 100만원으로 병원비 상한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B 후보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받고 있는 건강보험·실업급여·정착지원금 등을 축소해 이를 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C 후보는 “교사에 대한 무분별한 소송과 허위신고로부터 교권·학습권을 보호하겠다”고 공약했다. 어느 후보를 선택하겠는가.
내친김에 블라인드 선거를 블라인드 사고법으로 확대해 보면 어떨까. 일상 속에서 정치적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익명화하고 인물들 간 관계를 각색한 응용문제다.
D 대통령에겐 처남이 있었다. D 대통령은 취임 후 자기가 잘 아는 같은 당 정치인인 E에게 처남을 취직 좀 시켜주십사 부탁했다. E는 흔쾌히 자기 회사에 처남을 취직시켜 주고 생활비도 얼마간 지원해줬다. 나중에 E는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도 되고 공공기관장도 했다. E가 처남에게 제공한 취업 기회와 생활비는 D 대통령에게 준 뇌물로 볼 수 있을까.
이 사건은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온 적이 없다. 블라인드 사고법으로 한번 판단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