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자아로 만나는 ‘이·팔 분쟁…‘샤일록 작전’

2025-02-27

현실과 허구의 경계 오가는 독특한 형식의 첩보소설

1993년 출간…반유대주의, 시오니즘 등 분열된 세계 그려

트럼프 ‘가자지구 점령’ 발표한 현재에도 시사점

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김승욱 옮김 |비채|572쪽 |2만2000원

필립 로스는 자신의 사칭범이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칭범이 현시대 유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은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체주의라고 주장하며 로스의 이름으로 유대인을 유럽에 재정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즈음 로스는 수면제 ‘할시온’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다. 로스는 이스라엘에 있다는 사칭범이 수면제 부작용으로 인한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의심한다.

사칭범이 있다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실에 전화를 건 순간, 로스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자각한다.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칭범 앞에서 로스는 역으로 제 신분을 파리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기자 ‘피에르 로제’라고 숨겨버린다. 진짜와 가짜의 세계가 역전하는 순간이다.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다만 실제 하는 현실의 이야기가 다수 소설에 차용됐기에 어느 순간엔 이것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천연덕스러운 것인지 저자는 서문에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소설이 자신의 일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 자신이 과거 1988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위해 정보 수집 활동을 하겠다고 동의한 적이 있다는 내용까지 실었다.

독자는 <샤일록 작전>을 쓴 필립 로스, 소설 안의 필립 로스, 그리고 사칭범 필립 로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유대인 그리고 팔레스테인 분쟁의 현실에 다가간다. 분열된 세계를 사는 분열된 자아는 서로 논쟁한다.

작품 속 필립 로스는 사칭범을 대면할 때마다 그가 주장하는 유대인 재정착, 디아스포리즘에 대해서 얘기 나눈다. 사칭범은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유럽에 재정착해서 이스라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이 나라의 영토를 1948년 수준으로 줄이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이 경우 아랍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칭범은 자신의 주장하는 디아스포리즘에 대해서 “서구에 유대인을 분산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폴란드나 루마니아, 독일에 유대인을 재정착시키자는 사칭범의 주장에 로스는 “그 나라들에 유대인 증오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로스는 이스라엘로 향한다. 사칭범과의 첫 대면 만남은 작가 특유의 유머가 느껴진다. 전례 없는 사칭 범죄를 저지른 자는 “여긴 어쩐 일이야?”라고 묻고, 변호사를 대동해 법적 조치를 고민하던 로스는 “지나가던 길이야.”라고 받는다. “당신은 당신의 특권을 조금 허비하고 있어.” “사실 당신은 그냥 도구일 뿐이야.”“우리는 동시성 사례야”라며 사칭의 정당함을 설파하는 이를 보며, 로스는 할시온 부작용에 시달렸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사칭범이)내 무력함을 패러디하는 건가?”라고 고민하는 동시에 “이런 문제는 올리버 색스한테 맡겨두자”고 해버린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로스는 서문의 선언대로 모사드 정보원이 되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잘 읽히는 소설이지만, 턱턱 걸리는 부분이 있다. 로스는 사칭범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한다는 사실을 듣고 재판정을 찾아간다. 데미야뉴크 역시 실존 인물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이뤄졌던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근무하며 악질적인 행동을 저질러 ‘공포의 이반’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데미야뉴크의 행위를 묘사하는 부분은 길지 않지만 잊어 넘기기 어려운 무게로 독자의 책장을 붙잡는다. 누군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여전히 “인생 전체가 과거의 손아귀에 잡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중 로스의 말대로 어떤 정의의 구현은 저주의 부활이기도 하다. 유대인 국민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게는 그저 비극이다.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된다. 지난달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의 미국 점령’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후 가자지구 주민의 자발적 출국 등 이주를 돕겠다고 하지만, 이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겪은 인종말살 정책의 다른 버전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993년 현지 출간된 책은 이듬해 미국 최고 소설에 수여하는 펜/포크너상을 받았다. 출간 당시 첩보소설의 문법을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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