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날개 먹거리와 일자리] “인간의 본성, 일자리 통해 먹거리 마련하며 자손 번식”

2024-09-18

(35) ‘빈곤의 덫(poverty trap)’ 탈출보다 집권욕심에 치중

고대사회서 일자리 중요성 알아

산업·가정·사회 등 안정화 순환

美 경제학자 천년 프로젝트 제안

“국가가 가난을 끝내는 것 가능”

임진왜란 땐 왜군보다 끼니 걱정

기근은 외침·민란·홍수와 함께

고대국가의 제왕들이 ‘일자리 최고 복지(鼓腹擊壤)’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서한(西漢)의 대신(大臣) 조조(晁錯, BC 200~BC 154)가 BC 157년에 문제(文帝)에게 올린 ‘일자리(먹거리) 귀함을 논하는 글(論貴粟疏)’을 보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내용이 있어서 요약하면, “백성들이 빈곤하면 간사(방황, 불안, 불순)한 마음이 생긴다. 빈곤이란 부족함이며, 부족함은 일하지 못한 데에서 생긴다. 일하지 못함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며, 안정된 일자리가 없으면 정착할 수 없다. 일자리를 찾아서 고향을 떠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에게 가정은 경시된다. 결국은 백성들이 새와 짐승처럼 되고 만다(不農則不地著,不地著則離鄕輕家,民如鳥獸).”

이어서 “백성들은 국가지도자들이 그들을 위한 어떤 정책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아 방향을 가리지 않고 낙수효과 혹은 나비효과를 내게 된다(民者,在上所以牧之,趨利如水走下,四方亡擇也).”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백성을 막는다는 건, 돌로 쌓은 성벽이 열 길이고 범접하지 못하게 끓은 물로 채운 해자가 백보(百步)라고 해도, 아니 갑옷을 입은 병사 백만 명이라 지킨다고 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를 보면 일자리는 국가 정치의 가장 근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粟者,王者大用, 政之本務).”

BC 200년 이전 고대사회에서 일자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 표현으로는 일자리 안정화(有恒事) △산업(먹거리)의 안정화(有恒山) △가정과 사회의 안정화(國泰民安 △결혼 및 출산의 안정화(均風俗)라는 순환을 말한다. BC 300년경 맹자(孟子)는 한 마디로 “인간 본성에는 일자리를 통해 먹거리를 마련하며 자손을 번식하려고 한다(食色性也)” 라고 했다. 고대국가에서도 일자리 복지를 통해서 “개인적 자아실현의 욕구를 성취하게 하고, 빈부의 양극화를 균등하게 사회적 안정화를 도모했다(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齊).” 한 발 더 나가지 않아도 “성취균등(成就均等)”이란 국가이념을 구현하고자 고려 때 성균관(成均館)을 설치했다.

동양 고대사회에 유행했던 말이 “하늘은 먹고 살 수 없는 인간을 만들지 않는다(天不生無祿之人).”라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위정자(爲政者)들은 “가난의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Even a country cannot relieve poverty).” 고 했다.

이를 백성들에게 솔직히 까놓고 말할 수 없어, BC4세기 열자(列子)의 “어리석고, 귀먹고, 고질병에다가 농아라고 해도 집은 호화로운 부자요.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도리어 가난을 받느니라. 이는 태어난 해와 달 그리고 날짜와 시간(四柱八字 혹은 運數)에 의해서 이미 정해져 있다.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인용해 합리화했다. 개인의 빈부는 위정자 소관(爲政者 所關)이 아니라 각자 타고난 팔자소관(八字 所關)이라고 했다. 아예 위정자의 정치적 관련성은 하나도 없다고 부정하고 말았다.

이에 주역(周易)에서는 “하늘이 주는 행운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뿐이다(天行建, 君子以自强不息).”라고 실토를 했다. 심지어 순자(荀子)는 “인간이 하는 일은 하늘의 운명을 이긴다(人定勝天).”고까지 까놓고 말했다. 위정자의 빈곤타파(貧困打破) 정책이라는 “넉넉한 사람들로부터 조금 덜어서 없는 사람들에게 보태주는 것(損富扶貧)”이 전부였다. 아니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상부상조(相扶相助)에 의존했다. 전한의 가이(賈誼; BC 200~BC 168)라는 정치가는 BC 167년 삶을 회상하며 “불행이란 축복이 있는 곳에 있었다네. 축복은 불행이 모인 곳에서 있었지. 걱정과 기쁨도 같은 문(門)에서 나왔고, 길흉도 같은 성벽에서 살더구먼.” 이라고 ‘수리부엉이의 부침’을 읊었다.

2005년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 1954년생)는 지구촌의 가난을 끝내자고 유엔(UN)에 ‘천년 프로젝트(Millennium Project)’를 제안하며, “빈곤의 덫(Poverty Trap)”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행동을 개시했다. 국가가 가난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 가능하다는 생각을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 에 담았다.

이와 같은 혁명적인 생각을 BC 3세기 맹자(孟子, BC 372~BC 289)는 “국가에는 백성이 가장 존귀하고, 다음은 사직이며, 왕은 곧바로 가벼울 뿐이다(民爲貴, 次之社稷, 王則輕).”라고 전제로 했다. “(국태민안)이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발해를 뛰어넘는 것처럼(挾太山以超北海)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길섶에 노인들에게 나뭇가지를 꺾어서 지팡이를 만들어 주는 정도(爲長者折枝) 노력만으로 가능하다.” (孟子, 梁惠王上篇 第七章 : “...孟子曰, 不爲者與不能者之形何以異. 曰 挾太山以超北海, 語人曰 我不能, 是誠不能也. 爲長者折枝, 語人曰 我不能 , 是不爲也, 非不能也. 故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고 했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故不爲耳, 非不能也).”고 못을 박았다. 정도전(鄭道傳)이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저술하고자 “고려가 멸망한 사유를 살펴보니 불가능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亡國之近因, 則不能而少, 以能而不行,也多數)”고 적고 있다.

“고깃국에 흰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肉湯米飯,以飽食也)”라는 캠페인 슬로건(campaignslogan)으로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조선을 건국할 때 백성들의 먹거리와 일자리를 잠시 고민했었다. 잦은 가뭄, 홍수 및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 기근이 닥쳤기에 조반석죽(朝飯夕粥)은 고사하고 ‘한 달 아홉끼(三旬九食)’도 어려웠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인육(人肉)을 먹었다는 기록이 20회나 나왔다. 그 가운데 세종(世宗) 때는 5회나 등장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전쟁으로 폐농했는데도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계사년(癸巳年)과 갑인년(甲午年)에 대기근(大饑饉)이 찾아 왔기에 왜군보다 끼니와 전쟁을 했다. 기근은 언제나 혼자만 오지 않았고, 외침, 민란, 역질(疫疾), 메뚜기 떼(蝗蟲), 태풍, 홍수 등으로 엎친 데 덮치는 참담한 꼴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배고픈 서러움을 잊을 수 있었던 때는 지난 1970년대에 통일 벼(IR667)를 재배한 뒤에 비로소 빈궁기 보릿고개(麥嶺)를 기아(飢餓) 없이 넘기게 되었다.

‘빈곤의 덫(poverty trap)’을 숙명, 운명 혹은 팔자소관으로 인식시키면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yoke) 혹은 사회적 메커니즘(socialmechanism)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함에는 깊은 함의(含意)가 있다. 위정자 입장에서는 모르게 되면 순종하고, 사익까지 챙길 수 있었다. 공연하게 알리는 만큼 요구가 늘어나며, 동시에 불합리함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저항도 증가하게 된다.

‘빈곤의 덫(poverty trap)’의 특성은 자기강화(최면)에 의한 악순환(self-reinforcing cycle of poverty)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저소득, 저학력, 저기회(低機會), 저의욕(低意欲) 등으로 지속한다. 사회학(社會學)에서는 고등교육 및 첨단기술의 훈련에 접근성 부족, 저렴한 주택 및 교통에 가용성 부족, 저렴한 보육에 접근성 차단, 노동시장에서도 차별대우 등으로 ‘빈곤의 함정(poverty trap)’에 더 깊이 빠져들고 갇히게 된다.

글·그림=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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