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체포 직후 공개한 자필 편지에서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언급했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까지 음모론에 경도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었다. 한국 사회는 6·3 대선에서 반지성적 음모론에 종지부를 찍고 선거관리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법원 판결문과 선관위 설명을 토대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대표적 주장을 검증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주로 사전투표에 조작 의혹을 제기한다. 2020년 21대 총선 사전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의 평균득표비율이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모두 ‘63대 36’로 나타났다며 이를 조작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는 음모론자들이 다른 정당들의 득표수를 무시하고 계산한 결과다. 모든 정당 후보자를 포함한 실제 비율을 민주당·통합당·기타별로 보면 서울 ‘61대 34대 4’, 인천 ‘58대 33대 7’, 경기 ‘60대 34대 4’이고 다른 지역도 모두 제각각이다.
유권자가 사전투표소에 입장한 뒤 신분증 확인을 거쳐 손도장을 찍으면 선관위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 서버에 투표 기록이 남는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 서버를 해킹해 ‘유령 유권자’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과 사전투표소를 연결하는 전용 폐쇄망은 기존 통신망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외부 접속이 불가능하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2020년 21대 총선 인천 연수을 선거구 명부에 117세 여성 유권자가 포함된 것도 조작 증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선거구 선거무효소송을 기각하며 “주민등록사항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거주 불명자로 인해 선거인명부와 주민등록명부 간 차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설령 해킹으로 유령 유권자를 만들더라도 전자투표가 아닌 실물투표이기 때문에 실제 사람이 투표소에서 신분을 위장해 투표하지 않으면 실제로 한 표를 행사할 수 없다.

대통령까지 ‘가짜 투표지’ 거짓말
유권자는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된 투표지를 받은 뒤 투표소 내 기표소에서 투표한다. 관내 유권자는 투표지만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자신의 거주 지역 밖에서 투표하는 관외 유권자는 회송용 봉투에 투표지를 넣은 다음 봉투를 투표함에 넣는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투표관리관의 빨간색 날인이 뭉개진 ‘일장기 투표지’, 지역구 투표지와 비례대표 투표지의 인쇄가 일부 겹친 ‘배춧잎 투표지’ 등을 조작 근거라고 주장한다. 선관위의 지난 10일 시연을 살펴본 결과 ‘일장기’는 만년인(잉크 충전식 도장)을 인주에 찍어 사용할 때, ‘배춧잎’은 프린터에서 완전히 배출되지 않은 지역구 투표지를 잡아당길 때 만들어졌다. 대법원은 이들 투표지에 대해 “사전투표지를 위조했다면 굳이 이 같은 형태(이상한 투표지)로 작출해 문제의 소지를 남길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사전투표함 봉인에는 특수봉인지가 사용된다. 봉인지를 떼어낼 경우 표면에 ‘OPEN VOID’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사전투표함을 옮길 땐 각 정당이 추천한 참관인, 호송 경찰관, 투표사무원이 동행한다.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출입문에는 2중 보안장치와 자석 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폐쇄회로(CC)TV가 보관장소를 24시간 생중계하는 동시에 녹화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일부 영상 송출에 문제가 생겨 화면이 정지한 사례를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근거라고 주장하지만 녹화 영상이 보관돼 사후 검증이 가능하다. 윤 전 대통령은 자필 편지에 “선거소송의 투표함 검표에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발견됐다”고 적었다. 하지만 선거소송 검증에서 가짜 투표지가 인정된 사례는 0건이다.

사람이 직접 ‘수검표’, 외국인은 참여 못해
본투표까지 마감되면 사전투표함과 본투표함이 개표소에 이송된다. 개표사무원들이 봉인을 확인한 뒤 투표함을 열어 투표지를 정리하면 투표지분류기가 투표지를 후보자별로 분류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투표지분류기를 외부에서 해킹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투표지분류기는 유·무선 랜(LAN)카드가 제거된 형태여서 온라인 접속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기계가 분류한 투표지는 심사·집계부에서 개표사무원들이 손으로 일일이 세는 ‘수검표’로 1차 확인한 뒤 은행에서 돈을 세는 지폐계수기와 비슷한 형태의 심사계수기에 넣어 2차로 확인한다. 투표지분류기의 분류와 1·2차 확인 작업을 거쳤지만 누구에게 기표했는지 불분명해 재확인 대상으로 분류된 투표지는 개표사무원이 직접 확인해 유효·무효표로 구분한다. 개표상황표확인석에선 득표수를 포함해 모든 개표 과정을 수기로 기록한 ‘개표상황표’를 확인한 뒤 위원검열석으로 넘긴다.
각 구·시·군 선관위원회 위원들 모두가 개표상황표의 모든 기재가 맞는지 검열한 뒤 서명·날인하면 통상 법관이 맡는 각 개표소 위원장이 후보자별 득표수를 공표한다. 개표 결과 공표는 개표상황표 사본을 개표소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한다. 기록·보고석에서 공표 결과를 선관위 개표보고시스템에 입력해 국민에게 공개한다. 개표가 모두 마감되면 정리부가 투표지와 투·개표 기록 서류를 보관 상자에 넣고 위원장 도장으로 봉인한 뒤 보관한다.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관위 직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 등이 함께 관리한다. 여야 정당과 후보자가 추천한 참관인이 자유롭게 감시하며 사진·영상 촬영할 수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중국인들이 침투해 선거를 조작한다고 주장한다. 선관위는 2023년 한국 국적이 아니면 투·개표 사무원으로 위촉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꿨다.
부정선거가 가능하려면 선관위 전산망을 해킹하는 동시에 사무원·참관인 수십만명을 매수해 전산 조작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를 정확하게 일치시켜야 한다. 지난해 22대 총선에 참여한 전체 선거관리 인력은 69만9052명이었다. 당시 전국 3565개 사전투표소만 따져도 사무원은 10만3237명, 참관인은 9만8080명에 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