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현인들이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말해왔다. 적절한 근거와 치밀한 논리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때로 시적인 몇 마디 말에서 더 깊고 길게 마음을 울리는 깨달음을 만나기도 한다. “솔개는 하늘에 닿도록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마음껏 뛰노네.” <시경>을 인용한 이 <중용> 대목도 그렇다. 세상의 이치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어디에나 드러나 있지만 그것을 알아볼 눈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각득기소(各得其所)’,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즐거움을 누리는 솔개와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사소한 일상에서 그 무엇보다 크고 심원한 사람의 도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시적 언어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이다.
이 대목을 접하면 늘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잔잔하게 되뇌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다. 마땅히 누려야 할 자기 자리를 잃은 존재가 즐비한 세상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풍경이 있을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범상한 풍경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노랫말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법정에서 이 노래가 언급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종 변론에 나선 장순욱 변호사는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 헌법 수호를 말함으로써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켰음을 지적하며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단추는, 오염된 헌법의 말들을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일이라고. 법 지식을 무기 삼아 사심 가득한 궤변을 늘어놓는 법비(法匪)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변론의 언어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 석 달여, 참으로 많은 것들이 속속들이 망가지고 있다. 그 모두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와 모양을 아예 잃어버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깊다. 그 전에 한시라도 빨리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봄날의 위로처럼 이 땅에 펼쳐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