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 수필가·前 초등학교 교장

미네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곡선이 살아 숨 쉬는 백색의 전시 공간, 그 안에서 빛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벽을 쓸고 지나갔다. 그 흐름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한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맨드라미」
전성기, 닭 볏처럼 붉디붉던 꽃은 모든 걸 내려놓고 스러져 있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바람에 흔들리는 꽃대들. 마치 숙련된 배우처럼 장엄한 마지막을 연출한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겹겹이 쌓인 색채들이 층층이 보인다. 강렬한 붉음과 흐려진 잔상들은 선명함과 흐릿함이 뒤엉켜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 앞에서 문득 나의 세월이 오버랩됐다. 묵묵히 걸어온 43년 기적 같은 시간, 눈 뜨면 학교 해지면 집.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진솔한 고뇌의 날들, 동료들과 고민하던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때로는 탈진한 채로 그 모든 순간이 겹겹이 쌓인 물감층처럼 나를 이루고 있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나의 삶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캔버스를 펼칠 시간이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마지막 출장. 인생 2막을 앞두고 떠난 은퇴 수학여행. 다녀온 후, 열병처럼 책장 정리의 강박에 시달렸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살아가게 할 수 있다면 그 연결고리는 기록이기에 마침내 오래된 기억의 세간살이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세월의 흔적은 하얀 먼지가 되어 소복이 쌓여 있다.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책장에서 지나간 세월을 끄집어낸다. 제본된 교육과정, 학급 경영부, 졸업 앨범, 연수 이수증, 빼곡한 메모들이 갈피마다 끼워져 있는 교육학 서적들. 손을 뻗으면 닿는 것마다 한 시대의 나였다. 무엇 하나 허투루 지나간 것이 없었구나. 새로운 기록들에도 이 자리를 내어줄 때가 되었네. 남긴 흔적들은 언젠가 어디선가 또 새로운 결실로 이어질 거라 믿기에….
3월 첫날, 봄비가 잠든 대지를 촉촉이 어루만진다. 퇴직이 마냥 기쁘지만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은 이 애매한 감정, 계절은 분명 봄을 알리지만 마음은 철 잊은 새처럼 잔뜩 웅크려 있다. 이렇게 뒹굴뒹굴해도 되는지, 익숙지 않은 편안함이 더 불편하다.
오후 들어 이불을 박차고 신촌으로 차를 달렸다. 7년 전, 학교 교정에 매화 세 그루를 심었었다. 지금쯤 하얀 꽃등을 달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겠지. 매화는 쉽게 피지 않는다. 그 작은 꽃잎이 세상의 찬 기울을 밀어내고 피어나는 걸 보면 어쩌면 삶도 그렇지않나 싶다. 흔들리고 기다리고 준비하며 나아가는 것.
그 모든 것과 정겹게 작별할 때가 된 것 같다. 향기 절정에 이른 매화도 때가 되면 스러지고 여름 한낮의 붉은 닭 볏 맨드라미도 스러지니, 나도 익숙한 것들에서 미련을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꽃을 피우기 위한 미생(未生)의 시간을 지나 등 뒤에 숙제처럼 짊어졌던 완생(完生)의 시간, 그 길을 홀연히 걸어왔다면 이제는 나를 위한 미생(美生)의 시간을 살아야겠다. 더 깊고 더 단단하고 더 아름다운 삶으로. 눈보라 속에서도 끝내 피어나던 꽃, 그러나 열매를 맺으려면 그 화려함마저 내려놓아야 한다.
꽃이 진다고 끝이 아니다. 오히려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일 뿐. 나의 시간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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