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공화국 해부 〈상〉
#지난달 16일 경기도의 A 의원에 가서 "영양 주사 맞고 싶다"고 했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가 입을 벌리라고 했다. 진료는 그게 끝이었다. 의사는 "목이 부었네요"라며 급성인두염으로 진단했다. 1분이 채 안 걸렸다. 목에 전혀 이상이 없는데도 이렇게 진단했다. 옆방에서 비급여 아미노산 주사를 맞았고 10만원을 냈다. 병원은 보험사 제출용 진단서를 끊어줬다. 거기엔 전신 증상 악화에 따른 치료 목적으로 수액 주사를 맞았다고 돼 있다. 수액주사실에는 영양 주사를 맞는 아동·노인 등이 누워있다.
#지난달 25일 서울의 한 정형외과 의원. '도수·통증센터' 구역에 18개의 방이 죽 늘어서 있다. 아쿠아 치료실, 체외충격파실, 전기치료실도 보인다. 직원이 "도수치료 30분에 8만원, 80분은 20만원"이라고 설명한다. 50대 이상 고령층 환자가 많다. 50대 딸과 같이 방문한 70대 여성 B씨는 "도수치료 받으면 시원하니까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의사는 "보통 환자당 10회 정도 도수치료 받는데, 실비(실손) 처리 다 된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은 증식치료·체외충격파, 비만약 삭센다 주사, '백옥+신데렐라' 주사, 성장판 검사 등 다양한 비급여 진료를 제공한다.
요즘 흔하디흔한 의료 현장의 모습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非) 건보 진료, 즉 비급여가 이런 식으로 급팽창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이윤 추구, 환자의 도덕적 해이에 실손보험이 자양분을 공급하면서 통제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비급여는 건보 재정을 갉아먹고,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의 주머니를 축낸다. 또 안과·정형외과 등 비급여가 많은 분야로 의사가 쏠리고 필수의료는 빈약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의 2.6%인 2521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전체 진료비 중 65.7%만 건보가 부담한다. 19.7%는 건보가 보장하는 진료를 받을 때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이다. 그 외에 건보가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가 14.6%다. 이를 총 진료비로 환산하면 약 18조원이다. 2015년보다 53% 늘었다.
비급여는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불린다. 한 곳을 누르면 다른 데서 튀어 오른다. 문재인 정부가 건보 재정 26조원 넘게 투입해 '비급여의 급여화'를 추진했지만, 건보 보장률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해도 나머지 항목의 횟수나 양을 늘리기 때문이다. 또 신의료기술이 계속 나오고, 대다수는 새로운 비급여가 된다. 2007년~올해 6월 1590건의 검사·처치 등 신의료기술이 나왔다.
서울의 한 한방병원은 전국 최다 '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골수 흡인 농축물 관절강내 주사' 기관(실손 청구 기준)이다. 자가 골수를 뽑아내 원심분리·농축한 물질을 주사하는 주사로 통증 경감과 기능 개선 효과를 인정받은 신의료기술이다.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줄기세포'라는 용어를 쓸 수 없게 돼 있는데 업계에선 마케팅을 위해 쓴다. 지난달 기자가 방문했을 때 의사는 "관절염 2기다"라며 "연골 재생 효과가 있는 줄기세포 시술"이라며 주사 치료를 권했다. 이 병원 직원은 "지금 시술하면 '1+1'이다. 10월에 하면 40% 할인"이라고 말했다. 마치 상품 팔듯 홍보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줄기세포 시술이라 할 수 없고, 연골 재생은 안돼 광고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비급여 관리에 손 놓고 있다시피 한다. 가격 공개가 전부다. 규제가 없어 진료비 책정도 의료기관 마음이다. 병원급은 사상 처음으로 594개 비급여 항목의 지난해 9월 진료 내역을, 의원급은 올 3월 내역(1068개 항목)을 보고 받았다. 전체 파악은 어림도 없다. 서남규 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비급여 진료는 표준화가 안 돼 있어 그 규모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건보 재정에도 독이다. 비급여 진료에 진찰·검사 같은 건보 진료가 따라가기 때문에 건보 재정이 샌다. 앞에 예로 든 경기도 의원 수액주사에 1만2330원, 정형외과 도수치료에는 약 3만원 빠져나갔다.
상위 10위 비급여는 각종 주사, 도수·체외충격파·증식 치료, 백내장 수술, 하이푸시술, 비밸브재건술 등이다.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1인 병실료, 진단서·증명서 발급, 미용·성형도 대표적인 비급여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고령화 탓이 크지만 비급여 진료도 한 몫 한다. 비급여는 필수진료 근간을 흔든다.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 비율이 높은 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 등 6개 과목 의원에 취업한 일반 의사(봉직의)가 올 2월 231명에서 7월 362명으로 늘었다.
백화점식 비급여 의료기관도 등장한다. 지난달 24일 방문한 서울 서초구의 C 의원은 4개 층에 걸쳐 피부·성형·도수·아동발달 등 비급여 진료를 다양하게 갖췄다. 주름 개선, 몸매 교정 등을 홍보한다. 근처의 D 의원도 여성 생식기 성형부터 비만 치료제 ‘위고비’까지 다룬다.
환자도 비급여 진료에 익숙해졌다. 지난달 16일 서울의 한 정형외과의원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발목이나 허리가 아플 때마다 도수치료 받으러 온다. 과잉진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병원장은 ”일부러 돈 들여 맞는 비급여 주사가 효과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유행처럼 번져서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신규 비급여가 신의료기술 등의 구멍으로 빠져나오면서 많은 의사가 동의하지 못하는 항목이 생기고 있다.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을 운영하는 나라 치고 우리처럼 비급여를 방치한 데가 없다"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혁 추진 속도를 높여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올해 말 관련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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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ㆍ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