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에 대해 알 수 없는 정부의 속내는 결국 ‘혼날 때’(11%)와 ‘혼내고 싶을 때’(52%)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로남불’식 집값 취사선택에도 통계 조작이 아니라는 걸로 그나마 위로 삼아야 할까.”
2020년 7월 27일자에 썼던 칼럼 ‘혼날 때는 11%, 혼낼 때는 52%’의 마지막 문장이다.
문재인 정부 3년 차이던 당시 서울 집값은 그야말로 다락같이 올랐다. 집값 상승 폭을 놓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맞붙었다. 경실련은 ‘KB주택가격동향’을 활용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중윗값이 52%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김 장관은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 통계를 근거로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은 14.2%, 서울 전체 주택값은 11.5% 올랐다”고 반박했다.
당시 국토부는 중간값의 과잉해석 여지를 내세우며, 중위 가격이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감정원의) 집값 산정 방식을 공개하지는 못했다. 반면 대출 규제에는 가격 상승 폭이 더 큰 자료를 썼다. 정부의 ‘체리피킹’식 집값 선택은 의아함 투성이었지만, 통계의 함정일 뿐 설마 통계 조작까지 이뤄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과 기대였다.
하지만 지난 17일 감사원이 공개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공개문은 국가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감사 착수 2년 7개월 만에 나온 최종 결과 발표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과 소득·고용 통계 조작이 드러났다. 특히 부동산 통계는 4년간 최소 102차례의 조작이 이뤄졌고, 그 결과 민간 통계 상승률과 최대 40배 이상 차이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 조작에 대한 세간의 심증이 물증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911페이지에 달하는 공개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통계 조작의 전모는 충격적이다. 구체적인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와대 행정관과 국토부 담당자 사이에 통계 ‘마사지’에 대한 메시지가 무시로 오갔다.
끊임없이 통계 조작 요구를 받은 부동산원 직원들은 “얘들아 국토부에서 (집값 상승률) 낮추란다. 낮추자” “폭주를 하네요. 갑질 시전. 최근에는 대놓고 조작하네요”라는 대화까지 나눴다.
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조사’는 국가승인통계다. 감사원 설명대로 여러 경제주체가 주택 가격의 상승과 하락을 분석·판단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수립하거나 국민 재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분야의 정책 수립·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일반 국민의 주택 거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객관적이며 중립적으로 과학적 방법에 따라 정확한 통계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다.
통계 조작의 죄질은 나쁘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마사지’하려 국가 통계를 제멋대로 주무른 건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다. 인사·예산권을 휘두르며 국가의 신용도와 맞닿은 통계 신뢰도를 훼손한 위법 행위다. 계획경제에서나 가능할 법한, 정책 당국이 원하는 만큼 집값 상승분을 정한 뒤 이를 국가 통계로 발표하며 가계 등의 판단을 왜곡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국민의 재산권도 침해했다. 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 통계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재초환)와 분양가 상한제 등의 주요 기초자료로 쓰인다. 그 때문에 통계 조작으로 인한 피해도 발생했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전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통계 조작으로 재건축 조합원이 더 내게 된 부담금이 1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재초환 부담금은 재건축으로 오른 집값에서 전반적인 집값 상승분을 제외하기 때문에 집값 상승분이 줄면 부담금은 늘어난다. 정부를 상대로 한 줄소송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국가 통계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작돼 심각히 훼손되고, 국민 피해까지 초래했지만 당시 정부 관계자 및 집권당의 사과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조작 감사”라며 “감사원이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로 구성된 ‘포럼 사의재’는 “정확한 시장 상황과 정책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공직자의 의무인데, 이런 일체의 노력이 통계 조작 의도로 이뤄진 것처럼 소설을 창작했다”고 비판했다.
통계 조작 감사가 정치 탄압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수많은 부동산 대책이 실패한 이유는 알 듯하다. 공직자의 통계 조작으로 시장 상황과 정책 효과를 보여줄 정확한 수치가 없었으니 제대로 된 대책은 만무했을 터다.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