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1조 달러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
문 닫은 보건소 "예산 삭감 때문"
매년 사망자도 1000명 증가 추정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이미 악명 높은 미국 의료 제도가 저소득층을 위한 건강보험 제도인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으로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천문학적인 미국인들의 의료비 부담이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으로 추가로 증가하는 것은 물론 병원에 대한 접근성도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 연방 의회는 지난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을 통과시켰다. 이튿날인 독립기념일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법인에 서명했다. 이 법안을 통해 트럼프 정부는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감세를 연장하는 대신 다른 정부 예산을 줄였다. 향후 10년간 1조 달러 삭감하기로 한 메디케이드 예산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은 이미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지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지옥문을 열 것이라는 우려로 번지고 있다. 평균적으로 미국인들은 매월 적게는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까지 건강 보험료를 지불하면서도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매년 작지 않은 본인 부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의 비영리 의료비 분석기관 KFF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미국인들은 한 해 1만3432달러(약 1750만 원)을 지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의 의료비 지출을 기록했다.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은 대체로 연 5000~6600달러 수준이었다.
조지타운대 맥코트 공공정책대학원은 가장 큰 영향이 저소득 성인을 대상으로 메디케이드를 확대해 온 주들에 집중될 것이며 여기에는 많은 부모와 장애인, 노년층이 포함된다면서도 모든 주가 그 고통을 느끼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통계에 따르면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메디케이드 자금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번 법안 통과로 미국에서 건강보험을 잃을 것으로 전망되는 사람의 수는 무려 1100만~1200만 명에 달한다. 의료수가가 높은 미국에서 보험 없이 살아가는 것은 커다란 경제적 리스크(risk, 위험)는 물론 건강상 위험까지 의미한다. 올해 건강보험을 잃은 A 씨는 아이가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A 씨는 "병원에 가면 적게는 수백 달러에서 천 달러가 넘을 수도 있어 웬만하면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은 해당 예산 삭감으로 인한 고통을 분담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메디케이드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병원들이 문을 닫으면 모두의 비용 부담을 더욱 높인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문을 닫은 네바다주 커티스의 유일한 보건소는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이 운영을 종료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용만 커지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아예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지난 16일 미국의사협회저널(JAMA) 헬스 포럼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은 미국에서 연 1000명의 추가 사망자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매년 입원 건수는 10만 건 늘고 진료를 미루는 사람의 수 역시 약 16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소아 정신건강 및 발달 분야의 한 전문의는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이 불러올 파장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메디케이드는 의료에 꼭 필요한 존재"라며 "메디케이드가 없으면 병원이 문을 닫게 되고 생명을 살릴 치료가 필요할 때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성향의 싱크탱크인 루즈벨트 인스티튜트는 이번 법안을 '하나의 크고 무자비한 예산 법안(One Big Brutal Budget Bill)'이라고 부르고 "의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몇몇에게 감세를 제공하기 위해 어린이들에게서 의료와 먹을 것을 빼앗아 갔다"고 비난했다.
mj722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