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만난 노르웨이 입양인 비그디스 에크하르트(53·한국명 박현정)는 ‘생모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성인이 된 1990년부터 한국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홀트), 노르웨이 정부에 자신의 입양 서류를 달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서류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고, 홀트는 서류가 자신들의 재산이라며 보여주지 않았다. 노르웨이 정부 역시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고만 했다.
에크하르트는 입양된 지 약 50년이 지난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했다. 어느덧 50대 중반에 들어선 그에게 진실화해위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친할머니를 꼭 만나고 싶다’는 아들과 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지난 2023년 그는 운영하던 농장을 일부 정리해 마련한 돈으로 직접 한국에 방문해 생모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2020년 말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 기간이 만료되면서 생모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에크하르트씨의 기대는 무산됐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늘부로 (2기 진실화해위의) 모든 조사업무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한다’며 ‘2021년부터 접수된 2만924건 중 1만8808건(89.9%)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한 뒤 오는 11월 26일 모든 활동을 종료한다. 처리하지 못한 2116건은 조사를 중지한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3월 해외입양과정에서 발생한 입양 동의 부재,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에 공식 사과, 실태 조사와 후속대책 마련, 구제 조치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조사가 중지된 2100여건 가운데 해외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신청은 311건에 달한다. 에크하르트 등 신청인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에크하르트는 “비자도 내년 1월까지고,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면서 “3기가 출범하면 노르웨이에서 결과를 기다려야 할 텐데, 그때라고 잘 조사가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치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적 이어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진실화해위의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사건 등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는 구조 탓에 진실화해위는 정치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졌다.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와 전문가들은 독립성과 전문성이 확보된 독립적 기구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분영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 대표는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애초에 기록이 없을 수밖에 없음에도 단순히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가 중지되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전문성 있는 위원의 임명을 통해 입양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 등을 확실히 조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4월까지 진실화해위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과거에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죄의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진상 규명을 위한 기구”라며 “여야의 정파 문제가 아니라 인권적인 관점에서 조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렇기에 법조 경력이나 교수 경력을 볼 것이 아니라 인권과 역사 문제에 대해 충분히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로 위원들을 구성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