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에서 ‘찰칵’ 인증샷 유행도 바뀐다
‘손등’ 대신 캐릭터·야구팀·연예인 용지로
다만, 투표소 내 투표용지 촬영하면 ‘불법’
제21대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가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실시된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고 인증하기 위해 손등에 기표 도장을 찍거나 투표소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이제 하나의 투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SNS를 통한 투표 독려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야구팀, 연예인 등을 활용한 ‘맞춤형 투표 인증 용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날 각종 온라인 카페와 커뮤니티 등 SNS에는 다양한 형태의 투표 인증 용지 이미지가 잇달아 올라왔다. 국내 사용률 1위 SNS인 인스타그램에 ‘#투표인증’을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이 수십만 개 이상 검색된다.
유권자들은 SNS에서 공유되는 각종 이미지 중 원하는 디자인을 골라 출력한 뒤 기표소에서 도장을 찍어 투표 인증을 할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재외국민 투표에서 한 유권자는 개성 넘치는 투표 인증 용지에 도장을 찍어 사진을 올리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투표 인증 용지에는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국의 대표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속 ‘루피’부터 ‘망그러진 곰’ 등의 캐릭터 볼이나 손에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미지들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야구 마니아를 겨냥해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의 마스코트와 글러브를 그려 투표 도장이 마치 야구공처럼 보이게 만든 일러스트도 있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자는 의미의 ‘네모 안에 공을 넣어’를 응용한 ‘네모 안에 도장을 찍어’라는 문구가 담긴 인증 용지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팬덤과 취향을 반영한 용지들이 눈길을 끈다. 포켓몬스터를 응용해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넣은 용지와 축구팬이 만든 ‘골대 안에 공을 넣어’, 아이돌 팬이 제작한 ‘데뷔 10주년 기념 인증 용지’ 등 각양각색이다.
누리꾼들은 “마음에 드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걸 뽑아 갈지 고민 중”, “투표 인증 용지로 쓰고 싶은 이미지들이 너무 많아 큰일이다”, “투표 인증 용지 공유해요” 등의 반응을 보이며 참여 열기를 드러냈다.
서울 영등포구 사전투표소에 방문할 예정인 김지윤(25)씨는 “평소 카카오톡에서 애용하는 캐릭터의 투표 인증 용지도 있어서 그걸 인쇄해 가려고 한다”며 “친구들과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 투표 인증 용지를 뽑아가기로 했는데 투표 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SNS의 영향으로 기존의 일방향적 선거 참여 방식에서 벗어나 소셜미디어와 팬덤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정치 참여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미디어광고학과)는 세계일보에 “메스미디어 시대에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팬덤 등 개인의 특성이 반영된 시각적 메시지를 직접 만들어내는 ‘프로슈머’적 특성이 강화됐다”며 “팬덤 문화와 결합한 투표 인증은 투표에 대한 젊은층의 흥미와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실제로 청년층의 정치 참여를 유도해 투표율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인복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소셜미디어에서의 투표 참여 인증이 사회적 압력과 결합해 실제 투표율을 유의미하게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유명인의 투표 독려 메시지가 투표 참여를 증진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실증 연구들을 고려할 때, 팬덤 문화와 결합된 투표 인증 활동이 젊은 유권자들에게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투표 인증샷은 허용되지만 찍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투표소와 기표소 안에서는 사진 촬영 자체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기표 여부와 상관없이 투표용지를 촬영하거나 투표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기표소 내 촬영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로 투표용지를 촬영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제22대 총선에서는 사전투표일 당시 경기 파주시 투표소에서 기표가 된 자신의 투표지를 촬영해 특정 후보와 정당 SNS에 공개한 60대에게 벌금 80만원이 부과됐다. 해당 게시물은 선관위 조사 뒤 바로 삭제됐지만, 법원은 게시 순간부터 법 위반이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2023년 제8회 지방선거 사전투표소에서 교육감 후보 기표 후 투표지를 촬영해 온라인에 게시한 20대에게는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강원 원주시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자신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촬영하고 지인에게 전송한 20대도 같은 금액의 벌금형을 받았다.

투표소 밖에서는 촬영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후보자나 정당 대표자 등 선거관계자와 함께 촬영하거나 손바닥이나 손등에 기표도장을 찍어 촬영한 사진 등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또 공무원 등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인증샷 게시가 가능하다. 인터넷·SNS·문자메시지에 손가락으로 기호를 표시한 투표 인증샷이나, 특정 후보자의 선거벽보·선전시설물 등의 사진을 배경으로 투표 참여 권유 문구를 함께 적어 게시·전송하는 행위도 허용된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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