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친척들과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설날이 다가온다. 한 상 가득 차린 명절 음식을 연휴 내내 맛볼 생각에 마음속부터 든든해질 수도 있겠지만 기름지고 열량 높은 식사는 소화불량을 일으키기도 쉽다. 특히 소화가 잘 안되는 증세가 쉬 가라앉지 않고 답답한 상태가 이어진다면 지방을 소화하는 담즙을 저장하는 기관인 담낭 주변에 병이 생겼을 위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설 명절 음식이 소화불량을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각종 전과 튀김, 고기로 만든 음식은 조리 과정에 기름이 다량 들어가거나 재료 자체에 지방이 많이 포함돼 있어 평소에도 많이 먹으면 느끼하고 더부룩한 느낌을 받기 쉽다. 여기에 설날이면 빠질 수 없는 떡국 역시 탄수화물을 압축시켜 놓은 형태인 가래떡을 주재료로 하고 있어 열량은 높고 소화하기는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명절 분위기에 맞춰 준비한 간식인 한과와 약과 등도 고열량에 지방이 많은 점은 비슷해 맛있다고 계속 먹다간 배탈이 날 수 있다.
음식의 종류뿐 아니라 식사량 또한 소화와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면 소화 기능도 점차 떨어지는데, 평소와 달리 명절을 맞아 과식을 반복하면 소화기관에 부담이 더해진다. 소화기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증상이 바로 속 쓰림과 복통, 더부룩함 같은 증상이다. 모처럼 한 끼 식사 정도는 배가 부를 정도로 먹더라도 이런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날 경우엔 다음 식사부터 양과 음식 종류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열량·고지방 음식, 소화불량 유발
식사량 줄이고 식후 가벼운 산책을
채소·육류·떡국 등 순서로 식사해야
혈당 스파이크 부작용 피할 수 있어
지속되는 복통·명치에 통증 있다면
담낭 질환 가능성 커 병원 진단 필요
당뇨병이 있거나 그 전단계에 가까워 혈당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면 식사량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혈당 관리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하루 권장 열량을 크게 초과하면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을 조절하는 과정에 과부하가 생기며 체내에 불필요한 지방이 축적되기 쉬워진다. 혈당이 급격히 올라갔다 떨어지는 이른바 ‘혈당 스파이크’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섬유질이 많은 채소, 단백질 함량이 높은 생선과 육류의 살코기 순서로 식사를 한 뒤 밥이나 떡국 등 탄수화물 비율이 높은 음식을 가장 나중에 먹는 것이 좋다. 앞서 채소와 생선, 고기로 배를 채웠기 때문에 포만감이 커져 탄수화물 섭취량을 조절하기도 쉬워진다.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척들과의 식사에 자연스럽게 술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과음은 위 점막을 자극할 뿐 아니라 간과 췌장, 대장 등 소화기 계통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적당한 선에서 음주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늦은 밤까지 술과 함께 야식을 즐길 경우 소화불량 증상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멜라토닌 분비를 감소시켜 수면의 질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김재한 대동병원 내과 과장은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과식은 물론 과음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며 “실제로 명절 연휴 기간 중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 중 복통, 위장염, 식도염 등 소화기 질환의 빈도가 높으므로 명절에도 건강 관리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식사 후 소화가 잘되려면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30분 정도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서서 집 안을 정리하는 등의 신체활동을 하면 좋고 적어도 눕지는 말고 앉아서 상체를 세운 자세로 있어야 한다. 바로 눕거나 잠을 자면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이 생길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흔히 체했다고 표현하는 소화불량 증상이 있을 때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는 민간요법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효과는 없다. 탄산음료를 섭취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신 소화불량 증상과 원인에 맞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소량씩 섭취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소화제를 먹고 식사량을 줄였는데도 뱃속의 답답한 느낌이 며칠 동안 사라지지 않거나 복통까지 생긴다면 담낭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 김나루 이대목동병원 외과 교수는 “명절에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섭취하기 때문에 소화기 질환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며 “위쪽 배나 명치 부위에 통증이나 더부룩한 느낌이 있을 때 체했다고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는 경우가 많은데, 약을 먹어도 증상이 지속되거나 식후 1~2시간 뒤 심한 우상복부 통증이 발생할 경우 담낭 질환일 가능성이 크므로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담낭은 지방의 소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담즙을 모아뒀다가 배출시켜주는 기관으로 담즙 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복통이나 소화불량 등을 겪게 된다. 평소에 증상이 없는 담석증처럼 담낭 질환이 있었던 환자들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명절 연휴 기간에 갑작스러운 복통이 나타나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 담낭 질환은 담석증, 담낭염, 담낭선근증, 담낭용종, 담낭암 등을 모두 포함한다. 최근 서구식 식습관으로의 변화를 비롯해 운동부족이나 과도한 체중 감량 등의 요인이 작용해 유병률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담낭 질환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것이 바로 담석인데, 콜레스테롤과 담즙색소, 담즙산 등의 성분이 담낭 내에서 돌처럼 굳어지면서 생긴다.
명절 전부터 반복되는 소화불량과 자주 체하는 증상이 있었으면서 위나 십이지장에는 검사를 해봐도 딱히 뚜렷한 이상이 없었다면 담석 때문에 생긴 담낭염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 담석이 담낭관이나 담도를 막아 담낭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고 세균 감염까지 발생하면 담낭염으로 진행할 수 있다. 담낭염 역시 윗배나 명치 쪽에 집중된 통증과 불편감이 오른쪽 어깨나 견갑골 쪽으로도 뻗쳐가는 증상을 보이며 발열·오심·구토 등의 증상도 함께 나타난다. 담낭염을 비롯해 담석증과 담낭 용종 등을 복부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하면 대부분 담낭절제술로 치료한다.
김나루 교수는 “반복되는 소화불량과 복통 등 증상이 있는 경우 담낭 질환일 수 있으니 증상이 완화됐다고 그대로 두지 말고 연휴 이후에라도 주변 의료기관을 찾아 검사 및 진단을 받아야 한다”며 “만약 담낭절제술이 필요한 경우 신속하고 안전하게 복강경 또는 단일공 로봇담낭절제술을 시행해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